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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아이님의 서재
  • 포트레이트 인 재즈
  • 무라카미 하루키
  • 15,750원 (10%870)
  • 2013-11-21
  • : 2,995

얼마 전 자주 다니던 길임에도 버스를 잘 못 탔다. 이 길이 맞나 어리둥절한 와중에 주차 항의 전화로 멘붕 상태에서 끝내 택시로 찾아가는데 기사님을 믿지 못하고 또 우왕좌왕...... 우여곡절 끝에 약속장소 도착,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는지 집에 돌아오니 한이틀 밤샘한 기분이었다. 그저 버스 잘못 타고 길 못 찾고 욕 좀 먹은 저녁이었지만 ‘사십 넘어 길도 못 찾고 왜 이러고 사나’ 싶은 심경이 들자 스스로 참 초라하고 궁상맞게 느껴졌더랬다. 우두커니 앉아있다 눈앞에 있던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을 켰다.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어, 그런 소소한 일 신경쓰지 마.’ 한 인간의 목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I'm a fool to want you. - Lady in satin 수록곡)

그렇게 재즈가 일상에 들어왔다. 내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수필까지 읽어보았다. 하루키의 재즈 수필은 재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재즈 뮤지션을 알지 못해도 재밌다. 57명의 재즈 음악가들의 삶과 사랑, 음반과 그 음반을 듣던 당시 하루키와 일본인들의 삶의 이야기가 짧은 글 속에 녹아있다. 이 책이 싱싱한 활어처럼 느껴지는 것은 와다 마코토의 그림도 한 몫을 한다. 오륙십 년대 활동한 뮤지션의 사진이 없겠는가마는 와다 마코토가 그린 그들의 모습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의 한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 잭 티가튼의 엄정한 모습이나 캡 캘러웨이 노랑 양복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호기심이 확 당긴다. 지은이도, 그린이도 10대 시절부터 재즈를 즐겨 온 이들이다. 글, 그림 모두에 재즈, 재즈 뮤지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다. 하루키가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는 어디로 튈런지 알 수 없어 매력적이다. 찰리 파커를 이야기하면서 버디 리치 얘기가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식이다. 내키는 대로, 들려주고 싶은 대로 이야기는 자유로이 흐른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쿨하고 간소하며 동시에 땅속의 용암처럼 뜨거운 리듬을의 쏟아낸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훌륭한 게츠의 연주는 천마처럼 자유롭게 구름을 헤치고 날아올라, 눈이 시릴 만큼 반짝이는 별들로 총총한 밤하늘을 우리 앞에 제시해준다. 그 선연한 꿈틀거림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는 사람이 그 혼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굶주린 늑대 떼를 가차 없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 속에서 짐승의 하얀 숨을 토해낸다. 손에 잡아 나이프로 도려낼 수 있을 정도로 하얗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숨을......그리하여 우리는 조용히, 혼의 깊은 숲에서 사는 숙명적인 잔혹함을 보게 된다.

 

테너 색스폰 연주자 스탠 게츠와 음악에 대한 하루키의 묘사다. 누군가의 음악을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준다면 들어보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하루키가 들려주는 셀로니어스 멍크 이야기에 빠져 바로 그의 음반을 검색해보았다. ‘고독의 절실한 한 형태’라는 셀로니어스 멍크의 음악. 하루키와 같은 느낌이 오지 않더라도 어떤가? 20세기를 빛낸 고독한 한 음악가와의 만남은 21세기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무언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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