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소년들은 7시반경 집을 떠나 학교에 가고 오후 서너 시경 차량에 실려 밤늦도록 학원 수업을 듣고 귀가한다. 시간 차는 있겠으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경우 이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집, 학교, 학원 이 틀 안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시간을 채워나간다.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만든 시간표에 맞춰나가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채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불안감에 쫓기는 어른들이 키우고 있다. 세계 경제 순위 13위인 나라에 살지만 무한 경쟁체제를 내재화한 어른들의 삶의 목표는 명문대, 정규직, 노후보장이 되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열심히 살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른 채 내달리는 경우가 많다.
유은실 작가의「일수의 탄생」은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지’이다. 새마을 문구점 외아들 백일수는 모든 것이 특별할 것 없는 완벽히 보통인 아이다. 성격도, 성적도, 인물도 어느 한 곳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아이. 보통 아이 일수는 엄마의 기대에 눌려 늘 주눅 들어 있다. 보통 아이 일수는 더 잘나지 못해 미안하고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삼십대 중반까지 일수는 학교도, 학원도, 군대도, 직장도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다.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준 틀에서 쳇바퀴 돈다. 서예 스승의 ‘너는 누구냐’는 선문답 같은 질문에 우물쭈물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일수가 답답하지만 우리 또한 답해보았던가? 자기계발 의지와 각종 스펙으로 중무장한 채 죽을 때까지 생존 경쟁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꿈’까지 가지라고 말한다. 직업의 종류와 아파트 평수는 묻지만 ‘너는 누구냐,’‘너의 좋고 싫음은 무엇이냐’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사회에서 완벽히 평범한 일수는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늦은 질문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가족 소통을 다뤘던 「마지막 이벤트」로 우리에게 즐거운 이벤트를 선사한 유은실 작가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와 가벼움 속에서 가슴을 울리는 대사는 여전하다. 「일수의 탄생」은 초등 저학년부터 읽을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나를 찾아 나서는 어른을 위한 우화’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오십에도 육십에도 죽는 날까지 유효하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이며 ‘생각’과 ‘성찰’의 길에 자주 오갈수록 충만한 삶의 결을 보여준다. 삶의 한 지점에서, 어쩌면 자주 질문하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자주 넘어지기 때문이다. 폴 발레리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며 살지 않을때 타인의 말에, 사회적 욕망에 휘둘려 '나'를 잃게 된다. 시작이 반인 것처럼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늦어도 늦지 않은 법이다.
p.s 일수의 탄생은 동화다. 초등 저학년부터 읽을 수 있다. 또한 일수의 탄생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21세기 한 청년의 성장기다. 어른들과 함께 나누고픈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