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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bee0909님의 서재

아무리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언제까지나 번영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고양이 시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원래 사람이라는 동물은 자기 역량을 자만하여 우쭐댄다. 사람보다 강한 동물이 나타나서 그 코를 납작 눌러버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디까지 우쭐댈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동물은 도저히 우리 고양이의 말을 이해할 정도로 하늘의 은혜를 받지 못했으므로 유감스럽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해도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 자기는 끝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한테 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니 순진하여 좋기는 하나, 남에게 폐를 끼친 사실은 아무리 순진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때때로 나를 보며 고양이 팔자가 아주 편하겠다고 말하지만, 편한 게 좋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바쁘게 살라고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다. 제멋대로 소화하지 못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괴롭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불을 확확 피워놓고 덥다고 하는 것과 같다.
고양이도 머리 깎는 방법을 스무 종류나 고안해내는 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편안하게 지낼 수 없다. 편안하고 싶으면 나처럼 여름에도 털옷을 입고 지내는 수련을 하는 게 좋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나도 좀 덥기는 하다. 털옷은 솔직히 너무 덥다.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고양이로 태어나서 사람 세상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나로서는 이 정도 견식가는 달리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무르〔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의 주인공〕라고 하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동족이 돌연 대기염을 토하는 바람에 좀 놀랐다. 잘 들어보니 실은 백 년 전에 죽었다고 하는데, 뜻밖의 호기심에서 일부러 유령이 되어 나를 놀라게 하려고 멀리 저승에서 출장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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