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큰 말이 주는 위압감은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임으로써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P36
나는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P63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P65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P120
나는 윌의 질문 덕분에 한 사람에게 속해 있는 특질과 연인이 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특질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윌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P121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을 뿐이다.- P150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낙인이 찍히고, 성격 부여가 되고, 규정될 수밖에 없듯이,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도 우리를 바비큐 꼬치에 꿰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다만 적합하게 꿰는 사람일 뿐이다. 대체로 우리 스스로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점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대체로 우리가 이해받고 싶어하는 점들에 대해서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P156
나는 클로이를 사랑했다—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얼룩덜룩했다.- P160
다른 사랑의 이야기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시간, 모든 선택[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르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P161
닥터 사베드라는 안헤도니아라고 진단했다. 영국의학협회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하다고 규정한 병이었다. 스페인의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한 병이라고 했다. 이곳의 전원적인 풍경에 들어오게 되면 갑자기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P177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P180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이라는 보호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헌신을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P181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P211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온 세상 사람에게, 특히 클로이에게 보여줄 수 있으려면 죽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클로이에게 준 충격을 보고 화를 풀려면 나는 살아 있어야 했다.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햄릿에 대한 내 대답은 사는 동시에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P241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가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P256
그러나 이런 망각에는 죄책감이 뒤따랐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것은 그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망각은 내가 한때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