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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ing94님의 서재
  •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 19,800원 (10%1,100)
  • 2011-02-15
  • : 15,023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 몇 명 있다. <헌법의 풍경>과 <불편해도 괜찮아>의 작가 김두식,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설득의 논리학>,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신>의 저자 김용규, <대한민국사>,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의 한홍구, 그리고 <철학 vs 철학>, <장자, 그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작가 강신주가 그들이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글을 쉽게 쓰고, 전문가이면서 대중적인 글을 쓰고, 학문적 고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과 연관시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이 중 강신주의 새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서양 철학자들과 그들의 저서 속에 담겨 있는 중요 개념들을 단순히 철학적 담론이나 형이상학적 논쟁이 아닌 우리 삶에 접목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 책에는 전작과 달리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묵자, 한비자, 임제, 이지, 혜능, 지눌, 최시형 등 국내 및 동양의 철학자들을 많이 다루어 동·서양의 철학적 접근법의 차이를 새삼 깨닫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시형의 <해월신사법서>에서 다루고 있는 ‘향아설위’의 개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루고 있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순전한 무사유’ 개념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향아설위(向我設位)란 문자 그대로 “나를 향해 위패를 놓는다”는 말이다. 즉, 서구의 신앙이 외부적 초월자를 섬기고 경배하는 데 비해, 동학에서는 인내천, 즉 자기 자신을 섬기고 공경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향아설위’는 동학의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개념이자 인문학적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해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나 아렌트의 ‘순전한 무사유’ 개념은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이주국을 총괄했던 관료이자,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아렌트가 직접 취재하면서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잘 드러난다.
아렌트에 의하면 수많은 유대인을 죽였음에도 아이히만의 모습은 악마나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 소시민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즉 아이히만은 자기 일에 성실했던 관료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 그녀는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을 부과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155쪽)

즉 자신이 관료로서, 또는 어떤 위치에서 행하는 일들이 그 조직에 의해 자연스럽게 행해진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영향이나 효과를 ‘사유’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이는 강신주의 전작 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매치시켰던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라는 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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