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솔직히,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무심하게 읽어내려가려는데. 어느 순간 은재와, 아빠 서효인 시인과 대화를 나누는 나를 발견했다.그리고는 순식간에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부모됨이지만, 결혼을 한 후부터는 그래도 조금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이유로-
더욱 가슴 아프고,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좋았던 이유,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단순히 '다운증후군 딸'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그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했던 마음 역시 그런 이야기일 거라는 추측 때문에 생긴 것이었는데,
실상 이 책은, 자식으로, 부모로, 혹은 곧 부모가 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행복해지는 법,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게다가 서효인 시인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 단단한 문장과 200% 무장된 유머력.까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집합체!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아마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면, 은재를, 저기 저 아이를,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은재는, 그런 마법을 부리기 위해 세상에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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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반으로 가르는 직선의 손금.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의 먼 간격.
치켜뜬 듯 올라간 눈꼬리, 낮은 코.
심장 기형과 갑상선 저하의 가능성.
느리지만 결국 다 해내는 아이.
나는 택시 뒷자리에 앉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이제 막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 사람은 모두 필시 그리고 역시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다. 나는 내 어머니의 아들이다.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했을 때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니가 필요할 때, 나는 불쑥 손을 내민다. 나는 그녀의 아들이니까.
부성이 어디에서 시작되는 건지 잘 모른다.
막연하게나마 사랑하는 여인의 배가 아파 나온 자식이기에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건 줄
알았다. 나를 닮았으므로
사랑함이 당연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보다 상처가 먼저 생겼고,
아파하는 부은 아이의 얼굴과 새된 울음소리, 힘이 없는 숨소리가 독한 알코올이 되어 상처를 감쌌다. 인정사정없이 환부를 파고든 그것들이 상처를
단단하게 하고 있다. 새살이
돋을까 혹은 흉터가 될까.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에게 가장 큰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몰라서 묵묵부답했다.
바로 아빠 엄마예요.
맞다 싶어서 끄덕끄덕 했다.
아가야, 아빠는
보기 좋게 올라간 네 눈꼬리가 좋아.
울
때 삐죽 내미는 입술이 좋아.
낮은 콧등이 좋아.
보드라운 살결이 좋아.
얇고 고운 갈색 머리칼이 좋아.
마흔일곱 개인 염색체도 좋아.
네가 자라면 무엇이 될까.
천사는 직업이 아니니까 직장에서는 네 정체를 숨겨야 해!
등뒤 날개를 찾으러 야단법석이 날지도 모르잖아.
이건 네 이야기야.
네가 부린 마법을 적는 거지.
아빠의 반성문을, 아빠의 기록장을, 아빠의 모든 것을.
누구라도 너와 1시간만 함께 있으면,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모두를 사랑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