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식 시험은 군부통치의 결과물이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모델이 된 미국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아이 스스로 탐구하고 스스로 쓰며 답을 찾게 하는데 왜 굳이 우리나라만 이렇게 객관식 문제에 집착하는것일까? 그것은 우습게도 우리나라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객관식 시험이 도입된 시기는 대표적인 군사 쿠테타기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 초반이다(그 이전의 시험은 대부분이 주관식이었다. 고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생각해 보라), 국가의 시험 개입은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혼란을 만드는 곳인 교육 현장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뒤로 숨기고 공정, 효율, 객관 등 더 나은 것의 추구라는 명분으로객관식 시험의 무기를 강력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혼란한 시기에 온란을 부추길 수 있는 다양한 주관적 목소리를 듣지 않도록 주관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더욱이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국가가 시험을
관리하게 되면 국가 정당성은 높아지고, 이를 통해 국가는 교육 현장을 간단히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객관식 시험을 보면서 교육 현장은 자연스럽게 정권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특별히 1961년 군사정권은 어떤 형태의 자율적인 시험도 허용하지 않았다. 군사정권은 국가가 강력히 통제하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르도록하고, 그 시험에 의해 개인의 능력을 판정하는 사회야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도록 했다.
객관식 시험에는 누구도 개입하기 어려운 불변의 정답이 있기 때문에 객관성 또는 공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신화의이면에는 다양한 능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따위는묻어버려도 좋다는 정치적 선택이 들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믿지 않아도 시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혔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객관식 시험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