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처럼 똑 같은 1학년 담임을 하는데 분위기는 참 다르다.
여고생들은 그냥 속을 다 들어내고 친구처럼, 언니처럼 그랬다.
그것이 그들의 정서와 통했고 크게 무리 없이 일년을 우아하고 행복한 자태로 보낼수 있었다.
올해의 모드는 엄한 모습.
절대 웃지 않는다.
절대 말을 삼가한다.
절대 공식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안경도 무써븐 걸로 사 꼈다.(일과로 시간표 짠다고 너무 무리해서 눈병났다.)
아직은 그런 포장속에 날 좀 무서버 하는(아니 조금 묵어 주는) 듯 하는데 이게 언제 까지 갈는지.
입학식날 점심 먹고 난후 하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교 밖에 피시방 갔다가 걸려온 3놈.
길길이 날뛰는 시늉과 엄한 훈계와 엄마와 전화통화.
남자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반성문 쓰기 두번씩.
다음날 바로 위장전입으로 전학온 한 학생.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학교 공부 따라하라고 내일이 전입일이건만 오늘 교실에 앉게 하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그녀석 다음날 학교 쪽문 뒤에서 담배피다 걸려 왔다.
머시마 들 다루기로 노련한 학생부 샘들의 조언을 받아 부모에게 연락한다는 협박을 잘 밀고 댕겨 이 아이를 개조(?)하려 한다.
어떻든 한번 더 기회를 줬고 그녀석 쫌 조심하는 듯하다.
문제는 반장선거.
여학생과 달리 매우 소극적이다.
후보가 없어 고민고민.
덩치로 보나 행실로 보나, 공부로 보나(사실 공부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딱 반장감인 학생이 있었다.
계속 쑤셔서 입후보 하게 했다.
근데 갑자기 이상 분위기 감지.
첫날 피시방갔던 그 녀석들이 특히 그중 한놈은 극히 무뢰한 친구들 틈에 끼어 있다가
"뭐야!!" 하는 배심들어간 내 말에 그 친구들 대놓고 왈 "누구야!!"
다시 내가"여기서 내가 누군지 몰라서 누구야라 하는거야" 일단은 밀고 나갔다.
그제서야 슬금슬금 하지만 극히 무뢰배 스타일로 어슬렁어슬렁 사라지던 그 무리들 속에 있던 우리반 한놈.
그놈이 친구의 추천을 받아 입후보 하고 또 다른 피시방 놈이 지 스스로 입후보 하고
아 순간 땀나고 어지러웠다.
여기는 반장에 부반장 2명이라 이상태에선 참한 놈이 반장이 된다 해도 피시방 놈들이 다 부반장이된다.
어떻게든 다른 후보를 추천 받으려고 추천을 써라고 종이까지 돌렸다.
'애이 소심한 놈들, 자 써라 써"
은근 슬쩍 분위기 모면하면서 다른 후보를 유도.
한표씩 받은 놈들은 버리고 2표 이상씩 받은 놈으로 다가 2명을 선발했다.
다소 참하다.
그런데 기어코 사양하는 한놈. 미워라.
결국 참한 놈 한놈, 피시방 두놈, 억지로 내세운 한놈.
네명을 내세워 하루 선거를 미뤄 오늘 투표하기로 공고했다.
그래도 애들이 참한 놈들로다 뽑겠지. 피시방 한놈정도야 어떻게 다스려 볼수도 있겠지 기대하면서 선거의 중요성, 반장의 대표성, 우리가 원하는 반장의 요건들을 쓰게 하고 읽어주고 공유하고 .....
오늘 아침
후보들이 써온 유세문을 받아 아침에 읽어보고 칠판에 붙여놓고 드디어 투표.
후보들의 유세문 낭독때 피시방 놈들은 친구들이 이미 분위기를 띄운다.
난 계속 사진도 찍고 사이사이 휼륭한 반장의 요건을 되새기고, 분위기 침착하게 만들었다.
유세문 낭독때 참한놈은 왜 떠냐. 벌벌벌, 덩치값을 못한다. 좀 안쓰럽기도 하고.
억지로 세운 놈은 유세문도 안적어 왔다. ㅠㅠ
사퇴하겠다고 찾아온 놈을 억지로 달래고 용기를 북돋워 겨우겨우 유세는 하게 했다.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안되면 최다 2인으로 재투표를 하겠다며 투표용지를 1인당 4가지나 만들어 갔다.
결과 피시방놈 그중에서도 무뢰배들과 어울리던 그놈과 참한 놈이 박빙이다가
피시방놈이 압도적으로 21표가 과반인데 27표로 당선확정되었다.
멋지게 당선 사례 발표도 하더라. 동영상으로 찍어 줬다.
어쩌겠나 구슬리면서 살아야지. ㅠㅠ
남은 세명으로 부반장 선거 했는데 앞서 피시방 놈을 밀었던 놈들이 다시 뭉쳐 두번째 피시방놈 자진해서 나온 그놈을 또 최대 표를 얻은 부반장으로 만들어놓았다.
참한놈은 부반장이 되었으나 피시방놈들 등쌀에 과연 1년을 잘 날지 걱정이다.
억지로 세운 놈.
첫 투표에서 0표, 미안해라
두번째 투표에서 6표로 참한 놈의 표를 깍아 먹은 꼴이 되었다. 망했다.
표정관리하고 선거 결과 승복하고 축하 악수 하고 반장 부반장세놈 불러 당부하고
각각 불러 상담겸 당부하고 결국 우리반 정부반장은 이렇게 뽑혔다.
피시방 부반장 놈은 입이 귀에 걸렸다.
담배 냄새가 나길래 냄새 풍기지 말라하고 '뿌리 알기' 프린트물 거두라니까 열심히 칠판에 적고 자세가 장난아니다.
맘을 비우고 하나씩 가르쳐 가야겠지.
그러다 보면 혹 진주로 만들어 질지도. 하지만 참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