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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eje1님의 서재
  • 하루
  • 박노해
  • 18,000원 (10%1,000)
  • 2019-10-16
  • : 1,021
내가 보내고 싶은 하루를 생각해본다.

아침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 소박한 들꽃을 꺾어 성소에 바치고 햇살 아래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시작하는 아침. 나만의 리듬으로 완전히 몰입해 일하고 어떤 수치로도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끽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목욕을 하며 오늘의 근심과 피로를 씻어내고,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로 떠나 모험을 즐기다 죽음보다 깊은 단잠에 빠지는 밤.

어떤 날은 조금 다르게 보낼 수도 있을 거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영자 신문을 펴고 세계를 읽으며 시작하는 아침. 꽃 피는 봄날이나 공기까지 빨갛게 물드는 가을, 계절의 축복에 흠뻑 젖는 나들이를 떠나거나 친구를 만나 노래하듯 이야기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오후. 나만의 공간에서 깊은 숨을 고르며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밤.

하지만 시인을 시선을 따라가면 다른 하루가 펼쳐진다.
시인의 사진 속 멀고 높고 깊은 마을에는 먹고 마시는 것, 일하고 쉬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둘러싼 세계, 다양한 어울림과 홀로 침잠하는 고독이 어우러진 더 깊고 큰 하루가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저마다의 신성한 의식이 되는 세계의 다양한 하루. 나도 그런 하루를 꿈꾸게 된다.
 
손에 핏방울이 맺혀가며 흰 목화솜을 따는 파키스탄 소녀들에게
캄캄한 지하 갱도에서 세상의 빛을 캐는 볼리비아의 광부들에게
덕분에 나의 하루도 있었다고 마음 깊이 감사할 수 있는 하루,
 
화산이 폭발한 대지에서도 날마다 씨 뿌리는 인도네시아의 농부들의
불볕의 대지에서 무거운 돌을 이고도 내면의 빛과 기품을 잃지 않은 인디아의 일용직 여성들의
숭고한 모습에 벅차게 감동할 수 있는 하루,
 
먼 길을 걸어 밥을 짓고 몸을 씻고 가축의 목을 축일 물을 지고 오는 에티오피아의 가족처럼
사랑과 희망이 있어 기꺼이 그 삶의 무게를 감내하는 하루를.
 
“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시인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한 시구와 그의 삶이 담긴 서문을 보며 시인 또한 그렇게 살아왔을 것임을 느낀다.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에 어쩐지 부끄럽다가도, 그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작은 씨앗 같은 힘이 차오르는 것 같다.

황량한 오지 마을에서도 300년 뒤 푸른 숲을 꿈꾸며 어린 나무에 물을 주는 파키스탄의 소녀처럼 긴 호흡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그 하루 하루가 나만의 다른 길로 가는 발자국을 내줄 거라고, 우리 같이 그저 좋은 하루 하루를 살아가자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매일 보고 손에 쥐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예쁘다는 점에서 특히,
내 하루를 같이 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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