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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의 서재
  •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 16,200원 (10%900)
  • 2010-08-10
  • : 21,432
이기적인 유전자

과학 팟캐스트를 듣다가 최재천 교수로 부터 이 책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유학을 가서 이 책을 영문판으로 밤새워 읽고 새벽 안개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인식의 새지평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몇 날을 걸쳐 읽었고 인식의 새지평이 열리지는 않았고 좀 더 보충 심화 되었다.

들뢰즈는 인간의 신체를 욕망하는 기계라고 불렀는데 도킨즈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라 부른다. 개체를 중심으로 한 생명인식보다는 그 보다 더 유전자에 근본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원시수프를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세포라는 막을 만들어서 자신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은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가 자신을 효율적으로 복제하고 확산하기 위한 과정의 자연선택이다. 유전자는 자신을 운반하는 기게에 프로그램을 해 놓았고 그것의 성공여부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이론과 확율을 동원하고 경제성을 이용하여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윤리적 잣대 없이 단지 수치로 가능성을 나타내고 시물레이션하여 결과를 나타낸다. 역사란 거대한 뜻이 있다고 역설하는 이들은 아마도 이 부분에서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 결과다. 어떤 유토피아로 가능 과정보다 희망적이다. 단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기를 원하는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유전자의 ESS가 매파적인 것보다는 비둘기적이며 배반하는 것보다는 협력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보면 유전자들은 우연히 변이를 했고 뭉쳤으며 그들이 조정하는 운반체가 자연에 의해 선택되어 유전자는 많이, 오래, 정확하게 복제되었다. 13층이라는 영화에 보면 컴퓨터 게임속에 있는 인간이 자신이 프로그램인 것을 깨닫고 황망해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단지 우리가 욕망또는 본능이라고 불러왔던 것의 기원이 어디로 부터인지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베틀스타겔럭티카(미드)에 보면 사일런이라는 인조인간이 나온다. 이 인조인간들은 너무나 인간과 비슷하여 구분할 수 없는데 인간과 섞이어 존재한다. 본인도 인간인 줄 알고 살고있다가 특정 시점에 스위치가 켜지면 자신이 사일런임을 자각하게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여 사령관을 총으로 쏜다. 또 다른 사일런은 인간과 사랑을 하고 아이를 놓아서 자발적으로 사일런에서 이탈하여 인간의 편에서 싸운다. 여기서 다시 물어 볼 수 밖에 없다. 사일런이 인간이 프로그램하여 만든 개체라면 우린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램 되고 자연선택에 의해 선택되었다. 그러면 인간과 사일런의 구분이 있는가?
지금 우리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기계임을 알게 되었다. 13층의 프로그램속의 인간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에게 항의라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어디에 항의할 곳도 없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넘어 자기 삶을 선택해 나갔던 사일런 처럼 우리의 의지를 담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나의 선택이고 어디까지가 프로그램인지 구분이 잘 되지는 않는 것이다. 나의 주체는 프로그램인가? 유전자인가? 이 모든 것이 총체화된 개체인가? 유전자와 나는 분리되는가?
알파고가 프로그램이면 알파고가 바둑을 이긴 것인가? 프로그래머가 바둑을 이긴 것인가? 알파고는 프로그램인가? 기계장치의 총체인가? 프로그래머의 도구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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