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의 리뷰를 시작하며
<율리시즈>는 훌륭하지만 어려운 문학작품이라고 오래 전에 들었지만 읽을 기회가 없었다. 이 작품이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슈테판 츄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에서 작가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츄바이크에게는 제임스 조이스를 낯선 언어천재 쯤으로 설명했는데, 나는 <율리시즈>의 작가로 만났고 흥미를 느꼈다.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운전을 하거나 잠결에 듣기 시작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찬찬히 보니 서술방식 자체가 보통의 소설과는 달랐다. 특별한 줄거리나 상세한 묘사도 없이 대사를 위주로 해서 단문으로 기술하고 있었다. 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욘 포세의 서술방식과 비슷했다. GPT에게 설명을 부탁하니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했다. 욘 포세와의 차이점은 욘포세는 반복되는 문장으로 주인공이 갖고 있는 강박을 드러냈다면 조이스는 화자의 정체성을 조각조각 보여주는 것 같다.
<율리시즈>는 <오디세이아>를 패러디 해서 <오디세이아>와 똑 같은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등장 인물도 <오디세이아>의 인물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영웅의 이야기이고 십수년간 일어났던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한 평범한 아일랜드계 유대인이 단 하루 동안에 더블린에서 일어난 일이다. 작가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이야기 보통사람의 하루 일상을 괴물을 잡고 세상을 구하는 별자리로 남을 영웅의 이야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리뷰를 읽어보니 소설의 독자보다 소설로 해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 더 많다하니 따분하고 어려움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도도 아닌데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려할까? 따분하고 어려움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 멀리서 험준한 산위에 있는 성채처럼 언젠가 가보고 싶은던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별 모험 거리가 없는 내겐 가장 안전한 지적 모험이니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오디세이아>와 <율리시즈>를 한 장씩 병행하여 읽으며 이들을 따라 여행을 떠나 보겠다. 낯선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으나 멀리 거울에 비친 별자리 처럼 오디세우스가 있고 목적지가 어디라 해도 과정이 즐길만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책을 읽고 장별로 후기를 다는 것은 처음이지만 여행기를 쓰는 마음으로 시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