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절대적 시간과 공간이 무너진다면
겨울 햇살은 게으른 자를 위한 축복이다. 햇볕을 바라며 보르헤스를 읽다가 듣다가 졸기도 했다. 몽롱한 상태에서 이야기 사이를 헤매다 보니 시간을 잘 가늠할 수가 없었다. <두 갈래로 갈라진 오솔길의 정원>은 어떤 상태의 몽롱한 시간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중국계 독일인이며 영문학을 전공한 스파이 유춘이 영국군의 주둔지를 알리기 위해 주둔지의 이름과 같은 사람(앨버트)을 살해한다. 그런데 이 줄거리는 이 소설에서는 아주 사소할 뿐이다. 유춘은 동료가 영국군 장교 매든에게 발각된 것을 알게되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단지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이름인 앨버트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미로에 들어선 것 같은 상태에 빠진다. 기묘하게도 그가 찾은 앨버트의 집은 중국음악이 나오는 정자와 오솔길이 있는 집이고 앨버트는 유춘의 선조 추이펀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추이펀은 넓은 영지를 갖고 있는 성주였고 학식과 예술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모든 것을 그만두고 13년간 소설과 미로를 만들었는데 소설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미로를 어디에 만들었는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앨버트는 추이펀의 원고를 연구하고 정정하고 재정비한 끝에 소설 속에 시간의 미로가 있다고 한다. 끝없이 두 개의 사건으로 분기하여 분산, 수렴, 병렬을 계속하는 거대한 시간의 그물망이 미로라는 것이다. 유춘만 존재하는 세계, 앨버트만 존재하는 세계, 두 사람이 적으로 만나는 세계, 친구로 만나는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춘은 다른 차원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과 앨버트의 움직임을 무한하게 포화된 상태로 느끼지만, 자신을 쫓는 매든이 나타나자 즉각 앨버트를 사살하여 임무를 완성한다.
전자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면 두 구멍을 동시에 지나며 파동처럼 보이지만 관측을 하면 두 구멍 중 하나를 지나서 입자처럼 행동한다. 이 때 두 개로 분기하는 세계처럼 갈라지는 우주를 평행우주라한다. 이론으로 추측할 뿐 실험적 증거가 없으며 서로를 연결하는 통로도 없다. 하지만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른 우주에 있는 나를 찾는 이야기가 자주 다루어진다. 보르헤스가 1956년에 이 소설집 픽션의 후기를 썼으므로, 적어도 1956년 전에 이 소설을 썼다. 그가 평행우주 이론을 알고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가 현실에서 맞을 수 있는 선택의 상황은 전자가 한 개의 구멍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택과 동시에 가능한 파동이 붕괴되는 순간을 보르헤스는 놀랍게 묘사했다.
집을 에워싼 눅눅한 정원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무한하게 포화된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시간의 차원들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남모르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앨버터와 나였다. 눈을 들자 어렴풋한 악몽들은 사라졌다. 노랗고 검은 정원에는 단 한 사람만 존재했다.(중략)그는 리처드 매든 대위였다.
평행우주론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수많은 가능한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두 갈래로 갈라진 오솔길을 하나만 선택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우주관에서는 유춘이 임무를 완성하여 독일군이 영국군을 폭격하게 하는 것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폭격하지 않는 세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1980년대 구소련의 몰락 이후 거대담론이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보르헤스에겐 1950년에 이미 거대담론은 사소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유춘은 독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황인종을 우습게 본 상관에게 황인종 한 명이 부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임무를 수행한다. 그래도 유춘은 영국의 괴테 같았던 앨버트를 죽인 것에 끝없이 참회하며 지쳐있다.
갈라지는 오솔길 중 어느 길도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편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니체의 주장 처럼 영원회귀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선택은 무거워질까? 어떤 것이든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간은 꺼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 어떤 우주에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내가 있다하더라도 두 오솔길 앞에 서 있는 시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유춘이 임무를 선택하거나 영국인 괴테와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하더라도 각각의 오솔길에 있는 유춘은 차이가 있는 존재다. 명예를 얻거나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또는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선택압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또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의 미래는 불확정하다. 그래서 우린 미로에 갇힌 듯이 행동 한다. 그러나 미로를 벗어나는 길이 단 하나가 아니라면 많이 답답하거나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낯선 것을 만나더라도 무서워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신비롭게 여긴다면 미로는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