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말 이대로 좋은 걸까.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만약 이 다섯 사람이 모여서 이 빌라의 문제를 함께 논의 한다고 상상해보자." (14p)
책은 너무나 익숙한 한 빌라의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여기 다섯 사람이 있다.
시세 2억 원 짜리 빌라에 사는 집주인 윤자가, 전세가 1억 6천만 원에 살고 있는 최전세, 보증금 2천만 원에 월세 70만 원을 내는 박월세. 그리고 최전세와 박월세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 장부자, 월세를 감당 못해 더 열악한 곳으로 밀려난 김빈자.
우리는 이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살아간다. 5년 후 빌라 시세가 4천만 원 올랐을 때, 장부자와 윤자가는 웃고, 최전세와 박월세는 불안에 떨며 대출을 끼고 집을 매입하려고 애쓰고, 김빈자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밀려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자산 중심 경제의 단면이다. 최근 언론이 지적하듯, 한국 사회는 이미 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가 훨씬 심각하며, 부동산이 자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 속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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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숨 막히는 빌라 한가운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윤자가가 자신이 얻을 시세차익을 거부한다면, 최전세가 전세 보증금으로 인한 수익을 거부하고 박월세와 같은 월세를 부담한다면, 최전세와 윤자가가 박월세와 함께 동일한 월세를 나눠서 내는 건 어떨까. 각자가 가진 저축을 모두 모아 박월세와 최전세의 보증금을 높이고 공동의 월세를 낮출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박월세의 집을 공동으로 매입한다면, 혹은 윤자가의 집을 팔거나, 최전세의 전세 보증금을 나눠서 반 전세집 두 개를 구하고, 김빈자까지도 같은 월세를 분담하며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15p)
저자도 예상한 것처럼,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황당한가, 획기적인가, 터무니없는가, 아름다운가, 두려운가,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15p)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내 몫을 나누는 '사양(辭讓)'은 바보 같은 짓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금융 시스템 자체가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빚을 내서라도 자산을 사게 만드는 '상호 증폭적 순환 구조(조시 라이언-콜린스, 상품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집, 값에 대하여)'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이 상상이 그저 몽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실천/실험으로서의 빈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무언가에 대해 저항한다면, 그것의 바깥으로 나가 싸우는 것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오히려 가장 자본주의적인 영역, 바로 이 금융, 돈의 흐름 안에서 저항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니까 마치 자본의 바깥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가며 함께 싸워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자본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탈자본금융이 있고 노동자=소비자가 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183p)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기부가 아닌 '출자'의 형태로 조직하고, 이를 은행에 맡겨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대신 우리끼리의 자금으로 운용한다면 어떨까. "자본 소득을 전환하는 사례들은 드물지만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공하는 원천(159p)"이 된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은행 '빈고'가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작이었다.
"기꺼이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보증금을 모두를 위해 출자하는 사람이 있고, 정해진 비용보다 굳이 더 많이 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아름다운 행동들,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277p)
자본 수익을 거부하고 '사양'하고 싶어도, 그런 시스템이 없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투기 대열에 합류해왔다. 빈고는 "자본수익을 사양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닿아 있다(277p)"는 믿음으로,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담을 그릇(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100만명의 조합원이 1년에 10만원씩 저축한다면, 1년에 1천억원의 자산이 생기게 된다. 빈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빈고 조합원들의 평균 출자액이 약 100만빈 정도인데, 이 정도의 저축액이라면 민주노총은 1조의 공유지를 운영하게 된다. 이런 게 금융협동의 힘이다." (324p)
1년에 10만 원.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는 이 작은 행동이 모이면 1조 원의 거대한 공유지(Commons)가 된다. 윤자가, 최전세, 박월세, 김빈자가 서로를 헐뜯지 않고도 함께 살 수 있는 집과 마을을 만들 수 있다. 자본의 바깥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쓰는 돈, 매달 하는 저축의 방식을 조금 비틀어 '사양'과 '공유', ‘연대’의 시스템으로 흘려보낼 때, 그 황당하고 아름다운 상상은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 모든 상상은 실험 시간에 비례하여 현실이 된다고 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요인에는 실험 시간 말고, 이 실험을 함께 할 동료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빈고의 실천이 어쩌면 연극과 유사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지만, 마치 이곳이 자본주의가 아닌 것처럼, 자본수익에 기대지 않기로 설정하고 함께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실험이든 연극이든 그것은 끝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없으며, 빈고의 실험 혹은 연극은 16년 동안 계속 되고 있다. 저자는 빈고를 성공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성공은 아니라 하더라도, 누적 실험자, 연기자, 관계자들의 삶에 끼친 영향과 변화들을 생각한다면, 빈고가 만들어낸 성과는 분명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참여자로서 말하건대, 빈고의 실험/연극은 심지어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A: 우리는 빈고를 왜 하는 걸까?
B: 빈고에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전하지 못한 책의 자세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당신도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분명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