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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나랑
  • 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젠
  • 17,820원 (10%990)
  • 2025-05-20
  • : 73,118

"경험의 멸종" 책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 진화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경험이 멸종된다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다. 

왜 멸종이란 표현을 썼는지 책을 읽어 보면서 한 번도 생각 못했던 부분도 깨닫게 되고. 안 그래도 너무 빠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은데....

내가 원하지 않아도 마구 변해가는 세상, 마구 바뀌어도 괜찮은 걸까? 편리함, 생산성, 효율성.... 다 좋긴 한데 인간성이 결여 된다면 그건 좀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 어렵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증폭 시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기술은 자신의 감각을 불신하고 대신 기술에 의존하도록 우리를 훈련 시킨다.“

”신체적 신호, 표정, 어조를 읽을 수 있는 대면 대화는 ’더 깊고 매끄러운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했다.“

”프레드릭슨은 <심리 과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인식하고 그들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수록 건강해집니다.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잠깐도 알은 척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이 아니라 사회적 유리civil disengagement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회적 유리가 공적 공간의 표준이 되고 있다.”

“근접성은 공적 공간에서의 인식과 안전에도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말했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려면 그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한 일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림은 글을 읽고 쓰기 전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주변에 있는 대상을 그리면서 크기, 비율, 가능성 등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학생들이 뒤쳐진다고 해도 기술에 책임을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금 부족이나 부모의 투자 부족을 탓할 뿐이다.”

“지루함을 다루려면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그 느낌에 어떻게 대처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 없는 지루한 일상적 경험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 기술에 의존한다. 주의를 빼앗는 오락거리는 너무나 많고 그것들은 주의력을 좌초 시키는 사이렌의 섬과 같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기들은 지루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지루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에 맡겨서 지루함에 대처할 필요가 없게 한다. 

“다른 인간과의 대면 경험은 타인에 대한 건강한 존중과 공감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쾌락은 디지털 형태로 더 쉽게 소화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치명성이 제거된다. 그러면 쾌락이 완전히 탈바꿈 된다. 때로 쾌락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서 조작된 경험, 즉 위험보다는 통제, 우연보다는 검색, 변덕보다는 알고리즘, 개인 정보 보호보다는 편의를 우선한다. 다시 말해 쾌락의 가장 큰 변화는 쾌락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화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최근 먹은 음식의 사진을 올리고, 핀터테스트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꿈꾸는 집의 사진을 올린다. 쾌락, 즉 자신과 타인의 쾌락은 대중 오락의 한 형태가 된다. 또한 쾌락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목적은 우리의 데이터를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곳에 판매하는 플랫폼과 ‘공유’하는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변화 시킬 대상으로 보라고, 최신 앱이나 도구로 변화시켜서 개인화된 편리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보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노직이 염려했던 것처럼 기술이 우리 삶을 대신 살아주는 상황은 펼쳐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이런 기술을 통하지 않고, 이런 기술이 조장하는 행동에 부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무지개를 촬영한 것처럼, 오늘날 모든 경험을 디지털로 기록하려는 충동은 기술로 매개되지 않은 현재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없애버렸다.”

“메타는 인간이 더는 물리적 세계에 제한 받지 않는 공유형, 몰입형 VR공간, 즉 메타버스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메타meta(그 너머)’와 ‘유니버스universe(우주)의 합성어다. 일상생활에서 실제 경험을 가상의 매체로 여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보니, 이미 그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다. 동시에 물리적 장소가 우리 삶에서 발휘했던 힘, 좋든 나쁘든 특정한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우리의 우정과 커리어를 결정하게 했던 방식은 약화되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조슈아 메이로위츠는 ’사람이 있는 곳과 그가 알고 경험하는 것의 관련성의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모바일 기술이 발명되기 훨씬 전에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뿌리 뽑힘uprootedness’을 현대의 질병이라 불렀다. 베유는 현대인의 지역사회 참여 부족과 장소에 기반한 유대 관계의 부족을 우려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이 가져온 뿌리 뽑힘을 수용하고 그것을 ‘연결’ 또는 ‘이동성’으로 재정의한 다음 이를 일과 여가의 표준으로 삼았다. 우리가 장소 없는 모바일의 미래로 달려가면서 시민 생활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소의 개념을 잊어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매력적이고 새로운 방식이 발견되면서 오래된 방식은 짧은 추도사 조차 없이 사라지고 있다. 당연히 그것이 인간의 존재 의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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