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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r_0927님의 서재
  • 아파트먼트
  • 테디 웨인
  • 13,500원 (10%750)
  • 2021-10-20
  • : 189
[아파트먼트 리뷰 대회]
청춘은 그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시기다. 그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사를 쓴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상실'의 시간이고.

소설 속의 두 인물, 빌리와 '나' 역시 가장 반짝이는 시간을 함께 통과하며 예기치 못했던 상실을 향해 간다. 둘의 관계에 얽힌, 쉽게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어쩌면 반전일 이야기들.

나도 마치 이 소설의 화자처럼 말해보고 싶다. 나는 그들의 결론을 알고 있으니, 가정법으로. 만약 두 주인공 역시, 합평 시간에 누군가는 비난을 받았고, 누군가는 추앙을 받은 채로, 그러니까, 한 명은 위축된 채로, 다른 한 명은 확장된 채로 만나지 않았다면. 한 명은 윤택하고 모자람 없는 환경에서, 다른 한 명은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런데도 둘 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년 시절의 공통된 불행이 없었다면. 한 명은 잘 생겼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하지 않았다면. 한 명은 보수적이고 다른 한 명은 덜 보수적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부서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두 사람의 청춘의 조각은 시련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까.

이쯤되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은 아주 외롭고 또 찌질하고, 서툴고 부족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공평하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별로다. 보통이고 평범하다. 그런 그들이 통과하는 청춘의 시간 역시 2021년의 내가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하다. 그건 아마 그들과 내가 '청춘'이라는 단어로 한 데 묶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내가 청춘을 통과한 시기가 그들이 살았던 시기와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90년대가 지닌 "노스탤지어를 품은 채" 작가는 질투와 애증, 경외와 거부감, 다름과 틀림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 거리를 조절할 줄도, 미리 조심할 줄도, 덜 좋아하거나 덜 싫어할 줄을 모르는 청춘의 우리들을 소환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시간을 겪으며 나이 먹어 가니까. 그건 '그때의 나'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없이, 그 모든 시간 속의 나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이니까. 화자가 끝내 빌리가 합평에서 써 준 의견들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청춘의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기를. 그 많은 상실 속에서도 기어이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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