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이승우는 『생의 이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노출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p24) 글을 쓴다는 행위 안에는 역설적으로 무언가에 대해서는 끝끝내 쓰지 않겠다는 결단 같은 것이 녹아있지요. 저자는 무언가를 쓰면서, 다른 것을 글 뒤에 꼭꼭 숨기고야 맙니다.
그러니 독자는 저자의 글을 읽고, 그 저자를 잘 알게 되었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가 감추는 것, 말하고 싶지만 끝끝내 말하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많을테니까요. 그렇다고 저자가 모든 것을 마냥 감추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저자가 글을 쓰며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숨긴다 할지라도, 글에는 저자만의 고유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파도 위에 부서지는 윤슬처럼, 글도 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나오지 않을 빛을 반사해냅니다. 이 책에도 그런 빛나는 문장들이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섬세하고 집요한 문장에 놀랍니다. 섬세한 문장은 쉽게 느슨해져 집요하기 힘들고, 집요한 문장은 제 고집만 부리다가 섬세하기 힘든데, 많은 문장이 섬세하면서 동시에 집요했습니다. 그런 문장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예삐가 죽었다”와 “프림의 맛”에서 특히 그런 빛나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좋은 책 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