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1학년 입학하자마자 3월 중세불문학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50대 후반 교수님이 젊은분이시지만 그때는 되게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낯선 서울, 추운 3월 대학 새내기에게 진중하고 무거운 첫인상인 중세문학 시간이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첫 시간 전반적인 배경 소개를 하시며 그당시 프랑스의 옛 이름이 골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골로 간다.” 는 말이 “프랑스로 간다.” 는 뜻이라고 하시는데 교수님 그렇게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농담하시는 분위기를 파악 못해서 아무도 웃지않고 강의실에 정적만이 흘렀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교양으로 우랄 알타이어 수업도 들었었는데 몽골어랑 우리나라말의 발음과 뜻이 같거나 비슷한 단어들이 몇 있었다. 몽골어, 한국어 이전에 우랄알타이어라는 뿌리가 같았기에 그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그렇단다. 우랄알타이어의 유사성에 비해 서양 언어는 서로간에 훨씬 더 비슷하다. 이태리어를 교양으로 한 학기만 들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불어랑 이태리어보다 스페인어랑 이태리어가 더 많이 닮아있었다. 같은 형제라도 엄마 닮은애, 아빠 닮은애 있고 형제끼리라도 별로 안닮은 듯 한 아이들이 있고, 누가봐도 한 집 형제인 애들이 있듯이 언어도 마찬가지다. 어원이 같은 언어들끼리는 비슷한 뜻의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꽤 있고, 읽는 방식들도 엇비슷하기 때문에 어원을 알면 어학은 공부의 길이 정말 쉬워진다.
어릴적에 처음으로 봤던 어원을 다룬 책은 단어만 쭈욱 나열하여 예시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런 책이 거의 처음이라 베스트셀러에도 오르고 2권도 나오고 엄청 인기가 좋았었었다. 세창미디어 신간 어휘의 길, 어원의 힘은 그 당시 책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게 예시가 많고 풍부하다. 책을 몇 장 읽다가 순간 이게 이야기 책인지 어원책인지 잠시 헷갈릴만큼 글이 재미가 있었다. 이 분 왜 이렇게 모르는 분야가 없지? 싶을 정도로 다방면으로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고 이 정도 필력이면 문학가가 썼지 싶어서 지은이를 찾아봤다. 영문학박사이니 영미시는 기본으로 문학비평, 영화이론, 대중문화 사주명리학 동양사상까지 연구하는 분이셨다. 관심 연구분야가 동서양 문학과 문화에 두루 걸쳐있어서 책의 내용이 풍성하고 꽤나 재미있다. 인스타보다 재미있다.
어원적으로 봤을 때 영어로 꽃을 의미하는 단어 flower는 blood와 관계가 있다. fl-과 bl-의 소리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꽃이 피어나는 것은 bloom이다. 피어나다라는 뜻의 bloom이 blood와 bl-을 같은 어원으로 공유한다. “꽃이 피다 flower”라는 말은 한국어로 쓸 때, 은근히 시적이다. “꽃이 피다”라는 문장은, 꽃이 피어나다라는 뜻으로도, 꽃이 피blood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 그래서 “꽃이 피다”는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꽃과 피의 상관성을 아주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어위의 길, 어원의 힘』, 세창출판사 36장, 꽃이 피어서 4월은 잔인합니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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