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으로의 그라데이션 응원
belleunhi 2024/03/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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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절망조차 금지되어 있다
- 쇠렌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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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7
- : 607
우리에겐 절망조차 금지되어 있다. (키르케고르, 세창출판사)
책에는 키르케고르의 저작들에 있던 문구들이 실려있다. 아포리즘의 특징상 앞 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문장들이 나오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문득 읽다보면 가끔 좀 뜬금없다 싶기도 하다.
의심은 구별하는 행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만, 절망은 절대적인 것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다. 의심을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하지만, 절망을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P. 115)
이 쯤 되면 키르케고르가 이야기하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혹시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절망과는 뭔가 다른 의미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책에는 내용에 대한 해설이 없다. 키르케고르에 대한 소개에도 이 사람의 정서적 원인에 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이렇게 해서는 이 책 해결이 안된다 싶어 다른 곳에서 키르케고르에 대해 검색해봤다.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현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에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릴만큼 신앙에 독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첫 부인이 자식을 하나도 낳지 못한채 죽었기 때문에 그 당시 교회가 금지하던 재혼을 했다고 해서, 그리고 둘째 부인이 결혼 두 달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자신은 죄를 지었고 그 저주를 받아 자신의 일곱 아이들이 예수님이 사셨던 3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거라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실제 키르케고르의 아버지는 두 명의 아내와 다섯 아이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죄 때문에 집안 전체에 저주가 내려졌다고 여기며 괴로워했다. 살아남은 두 아이 중 한 명이 키르케고르이고, 키르케고르의 형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루터교의 주교가 되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니 키르케고르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책은 왜 키르케고르의 책들에서 여러 문구들을 엮어두기만 하고 작가에 대한 배경적 이야기를 안했을까. 책 맨 뒤에 키르케고르에 대한 소개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정서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처음엔 그 점이 좀 아쉬웠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작가에 대한 소개나, 작품 해설에 대해 별 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이 어쩌면 책 만드는 이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인간에게 행복은 단 몇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고통은 각 개인마다 이유가 모두 다 다르다고 한다. 이 책을 절망에 빠진 사람이 읽는다고 했을때 모두의 아픔이 다 다른데 키르케고르 절망의 구체적 이유를 찾아 밝혀버리면 각자의 절망에 빠진 다른 사람들의 개별적 공감을 얻기 힘들 것 같았다. 차라리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절망에 빠진 사람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적절한 선택을 통해 희망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읽는다고 치자. 그러면 독자들은 이 책의 문구에 각자의 상황을 이입해서 읽어나갈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메시지 전달력으로는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어쩌면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은 머릿속이 복잡해서 평온하게 책을 읽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올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종이가 검정색에서 점점 흰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그라데이션 응원이다. 책 커버도 검정 바탕 틈으로 빛이 세어들어오고 있다. 책 디자인의 시각적 효과를 통해서 글자를 읽기 이전에 이미 이미지 언어로서 메시지 전달을 다 하고 있다.
책 디자인 예술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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