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의 소통방식이 너무나 일방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의 최선이니 다른 사람은 으레 받아들여야 옳다는 식의, 예의를 가장한 그 이기심이. 그러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성의인데', '모르고 그런거니까' '네가 이해해야 해."
여기 그런 세상 속에서 본인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여인이 있다. 평생을 평범함 속에 살아온 그녀는 어느 날부터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다. 그러자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이 특별할 것도 없는 식습관을 뜯어 고치겠다며 야단들이다. 고기를 끊은 이후로 살이 빠지기까지 하니 이 가족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사위를 볼 면목이 없는' 친정 부모님은 딸을 어르고 달래도 보고, 심지어는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딸의 양 팔을 잡게 하고 억지로 탕수육 한 점을 입안에 밀어 넣어도 본다. 격렬히 저항하던 그녀는 그 자리에서 팔을 긋는다.
이상한 식습관을 고집하다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딸이, 부모님은 그저 걱정일 뿐이다. 그 비싼 흑염소를 사다 한약이라고 속이고 먹여보기도 하지만, '이거 한약 아닌데'라는 간단한 말로 거부하는 딸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딸이 애처로운 부모님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러니까 딱 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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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게 얼마짜린 줄 아냐? 이걸 버려? 니 애미, 애비 피땀이 어린 돈이다. 네가 그러고도 내 딸이냐? "
그리고 그녀의 언니가 있다. 어릴 적부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현재의 삶을 일군. 무슨 비디오 아트인가 하는 걸 하면서 생활에 별 보탬도 안 되고 아빠로서의 역할도 그닥인 남편과 살면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피곤한 삶을 견디어 내기만 하는. 자나깨나 동생의 상태가 걱정인 부모님의 대리인으로서 동생을 돌 볼 책임도 있는. 그래서 나물을 무친 날 동생네 들러 좀 나눠주려고 갔다가 인생이 바뀌는 장면을 목격하고 제 손으로 일처리까지 하면서도 그녀는 이상하게 침착하다. 그녀는 동생을 지켜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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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쳐나가고 싶은 두려움과 싸워 이긴 것은 오로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하나였다.
그녀 또한 언니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 한다. 식물이 되어간다며 이제는 아무 것도 먹으려 들지 않는 동생에게 과일이라도 권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동생은 살겠다는 걸까 죽겠다는 걸까.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살기 위해 살았던 걸까 죽지 못 해 발버둥 친 걸까. 어쩌면 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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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이었을까. 함께 살았던 팔 년 동안, 그가 그녀를 좌절시킨만큼 그녀 역시 그를 좌절 시켰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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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름끼칠만큼 담담한 진실의 감각으로 느낄 뿐이었다.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작품이 맨부커 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 이유 중 이런 말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면을 잘 그려낸" 뭐 그런 비슷한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인혜와 영혜의 강압적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비유를 잘 맞추는 것으로 일생의 보람을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언니 인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별 걱정없이 본인이 하고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방식을 가족들에게 강요한 것 또한 인혜였다. 본인이 견디기만 하므로, 상대도 좀 그래주기를 바라며. 때로는 미련함인지 착함인지 모를 상대방의 친절이 얼마나 골치아프냐 말이다.
그러나 언니 인혜는 그렇게 배우고 자란 장녀니까. 둘 중 누가 더 행복하고 불행하냐는 질문은 너무 바보 같을까? 식물이 되겠다고 온 몸으로 발버둥칠 지언정 모든 속박을 다 던져버린 동생 영혜와, 본인의 최선이었을지언정 아무 것도 떠나지 못 하고 책임감만 강한 언니 인혜 중. 누가 더 민폐일까? 누가 더 폭력적인 걸까? 간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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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저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니.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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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요. 저는 아직 진짜 채식주의자와 함꼐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내가 고기를 먹는 모습을 징그럽게 생각할지도 모를 사람과 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정신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는 건, 어찌됐든 유식을 혐오한다는 거 아녜요?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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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