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를 좋아한다. 배운 사람, 많이 아는 사람 치고 잘난 척하며 젠체하지 않는 꼴을 못 봤다. 그는 분명 한국 사회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만한 배경과 이력을 지녔다. 경상도 출신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우와 하는 대학을 나왔고, 무슨 무슨 장관을 지냈으며, 정치도 했고, 현재는 성공한 작가이자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거드름 피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고 그런 높으신 양반들이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할 때마다 '얜 또 뭐야' 하는 듯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낼망정, 가식 떠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쉽게 흥분하고 저렇게까지 날카로울까.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을만한 분이. 도대체 왜?
그렇게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한국 현대사>가 내가 읽은 그의 첫 책이었고 이번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어보기로 했다.
책에서는 제목 그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런데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선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나는 이럴까, 쟤만큼 저렇지 못 할까, 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내어 나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언론에 비치는 화려한 모습만 봐서 그랬는지, 학생 운동과 수감 생활 등의 이력을 알기는 했지만 그렇게 치열한 고민을 안고 사셨는지는 미처 몰랐다. 책에서 작가님이 묘사한 자신의 모습은 '열심히 살기는 했으나 의지대로 살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온 타협인'이라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하셨지만, 그 또한 유시민이라 가능한 자기평가라 생각한다. 세상에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고 보니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남 눈치 보느라 어떻게 해야 솔직한 지도 모른다. 작가님께서는 부끄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또한 열심히 산 사람이 다시 한 번 자기 인생을 열심히 돌아봤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작가님 본인이 뭐라고 늘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하셨지만, 내 생각에 작가님은 얄미운 매력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나는 유 작가님께서 좀 더 활동도 많이 하시고 책도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솔직한, 날카로운, 유쾌한, 어렵지 않은 글맛이란 작가님밖에 낼 수 없을 테니. 그리고 더 차갑게, 더 통쾌하게, 더 적나라하게 '그들'을 '발라주셨으면' 좋겠다. 나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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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돈 들이지 않고 빨리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법학과가 포함되어 있던 사회계열을 선택했다. 시험을 잘 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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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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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이 지레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산 것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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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는데도 죽는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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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마치고 돌아오니 계엄사 합수부에서 함께 두들겨 맞았던 선배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준다며 자기 출판사에서 편집부장을 하라고 꼬드겼다. 출판사 이름이 사장 이름과 같았다. 학민사. 사장과 영업부장, 편집부장 이렇게 셋이서 한 가족처럼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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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달콤살벌한‘ 것은 신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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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