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탓이다. 그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너무 좋았다. 시대를 날카롭게 뚫어보는 시선을 따뜻한 문체로 표현한 게 좋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기로 한 게 화근이었다. 주변의 추천도 있고 해서 그럼 다음 책으로 읽어보자 선택한 책이 이 <강의>라는 책인데, 덜컥 읽기 시작하고 보니 세상에 600쪽이 넘는다. 게다가 이 책은 성공회대에서 동양 고전에 대해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아이고, 딱 걸렸네. 꼼짝없이 공부하게 생겼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니나 다를까 어려운 말투성이다. 공자님 맹자 님부터 시작해서 묵자 법가까지. 중국의 사상을 다룬 내용이니 한자도 필수인데다 강의하는 분의 사상은 또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이 더 심오하게 느껴져 난감 또 난감. 그런데 책을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의 식견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의 일환으로 동원된 우리 주변의 수많은 예시들만 읽어도 뭔가 피가 되고 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가슴이 뜨끔, 무릎을 탁, 하는 순간이 있기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어려운 내용이다 보니 다 읽을 때까지도 이거 뭔 얘기야 그냥 읽고 땡 쳐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표시해놓았던 부분을 살펴보니 역시나 배울 점이 많다. 그저 그렇고 그런 '공자님 맹자 님'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아직은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만큼은 못 되지만, 그런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배움은 고통스럽지만 언제나 즐거운 법인가 보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서양 문화는 그 자체로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문화 일반의 준거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문화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주변적 위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서양의 시각에서 동양문화가 조명되는 구도이지요.- P25
공자도 그 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하였지요. ‘악여정통‘이라는 것이지요. 음악과 정치는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오늘의 서울에 와서 음악을 듣고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P62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P94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P109
과거의 담론을 현대의 가치의식으로 재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지요.- P156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P170
사실 나는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업슨 확대 재생산과 대량소비의 악순환이 자본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욕망 그 자체를 양산해 내는 체제입니다.
- P325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P327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P351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P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