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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 11,400원 (570)
  • 2015-11-02
  • : 5,312

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유럽 어디쯤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이놈의 상명하복, 이 빌어먹을 놈의 전체주의, 조금이라도 다르면 죽는 줄 아는 겁 많은 어른들.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 난 이상한 앤가 봐, 하면서 살아온 지 어느새 삼십몇 년. 나랑 같은 생각을 한다는 판사님이 있다길래 책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다 읽고 나니 판사님, 개인주의자 맞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제대로 된 개인주의자답게 다른 개인도 존중할 줄 아는 분이시네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회식이고 행사"라는 작가님은, 시험 하나 잘 보는 능력 덕에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 듣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단다. 사회나 조직의 불합리함을 알아보는 시각은 있으나 딱히 남을 위해 희생씩이나 할 정신 같은 건 없었던 대학시절을 지나, 어찌어찌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이 된다. 그리고 나라를 대신해 법을 집행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고 계시다.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성질머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공감 가는 구절이 많아 중간중간 책을 내려놓고 킥킥대며 웃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쾌한 글발이며 냉철하지만 따뜻한 작가님의 면모가 보여 재미있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며 나 자신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다. 소화기가 좋지 않아 음식을 가리는 나로서는 5인 이상 단체로 어디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그냥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으레 그렇다. 음식의 선택권도 그렇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선택의 폭도 그렇고. 술을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의 머리통들은 눈이 빠질 듯 해서는 이유를 물어댄다. 설명하면 알아듣기나 할 건가 뭐.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아까 그 머리통들은 각기 편한 방향으로 각도가 꺾인다. 나의 비혼 여부가 당신들에게 큰 숙제라도 남긴 양.

개인주의자라고. 내 생각에 이건 그냥 도대체 나 같은 부류가 이해가 되지 않는 자들이 최후의 보루로 붙인 딱지 같은 정의이고, 내가 생각할 때 판사님 혹은 작가님은 그냥 깨어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잘못된 부분이 너무 잘 보이고, 인간들 간의 묘한 기류를 잘 느끼고, 그 불편함에 굳이 동석하고 싶지 않은. 오히려 불편함을 잘 느끼기에 사람들에게 더 예의를 갖출 수 있고, 맡은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으며,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판사님은 인간을 혐오한다고 선언하셨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분인데 뭐.

오래간만에 공감 가는 유쾌한 글이 좋았다. 요새 영어만 보다 보니 우리글이 심하게 당기는데 갈증해소가 되고도 남는 즐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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