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정경 장편소설/ 래빗홀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고양이의 존재. 무척 신비로운 존재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지만,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시리즈는 기존 신비로운 이미지로 그려온 판타지 장르를 넘어 인간과 고양이 사이에 맺어지는 우정과 연대, 그리고 서로를 향한 책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1권에서는 고양이 말을 알아들을수 있는 고덕이 살해당한 새끼 고양이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2권에서는 천 년 집사의 탄생을 막으려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고덕과 테오가 주목받게 되는데...
기약 없는 감금 생활이 시작된 테오. 갇힌 방 밖으로 한발짝도 나갈수 없는 힘든 상황인데도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또래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조금 연세가 있으셨던 아버지가 남겨준 믿음 그를 버티게 한다. 마침내 그를 풀어준 이들은 테오에게 말한다. 천 년 집사의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라탔지만 정작 함께해야 할 고양이가 없다고. 그러나 테오의 대답은 명확하다. 그는 천 년 집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친구를 살리고 싶을 뿐이다. 이 한마디는 이번 3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기도 하다.
제목의 천 년이라는 시간, 소설의 무대는 한국을 넘어 고대 이집트로 나아간다. 무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고양이들의 비밀이 이제 본격적으로 서술되는데 그 스케일이먀 세계관이 매우 크다. 카노푸스 단지를 모티프로 한 네 개의 단지 속에서 테오는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과 마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행복했던 기억도, 아픈 상처도, 달콤한 유혹도 결국은 자신을 붙잡아 두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3권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분홍 캐릭터다.
테오가 감정을 극복하려 한다면 분홍은 반대로 '분노'를 끝내 갖고 가는 방식이다. 천 년 집사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내려놓는 인간과 감정을 짊어지는 고양이라니! 두 존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명과 맞서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특히 마지막싸기 분홍이 자신의 회차와 과거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장면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양이 세계의 설정도 더욱 흥미로워진다. n차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고양이들, 집사를 향한 보은이 담긴 수염, 그리고 완전한 힘을 상징하는 호루스의 눈. 이집트 신화는 내게도 늘 매력적인 소재인데 작가는 이 방대한 소재를 고양이들의 세계와 자연스럽게 결합해 독창적인 판타지로 재탄생시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악도 연대한다"는 문장. 생명을 지키려는 자들만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탐하는 자들 역시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잡는다. 고양이 회차의 비밀을 알아낸 함성혁이 거리의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과정은 어린이·청소년 판타지임에도 생각보다 묵직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선과 악의 대결이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니라 서로의 신념과 욕망이 충돌하는 이야기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한편 곳곳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유쾌한 모습도 작품의 매력이다. 분홍을 추종하는 "핑크 아미"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진지한 서사 속에서도 고양이다운 엉뚱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위기의 순간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 긴 시간을 견디며 이어지는 인연, 감정을 다루는 법, 그리고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번 권은 시리즈 전체의 중요한 비밀과 마지막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책을 덮고 나면 과연 천 년 집사는 완성될 수 있을지, 그리고 고양이들이 지키려는 마지막 조각은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 자연스럽게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고양이와 집사는 무엇이기에 서로를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책 속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게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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