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허영선 저/ 마음의숲(펴냄)
어제는 4.3 사건 희생자 추념일이었다. 그날의 심정을 시로 표현하다니.
어제 4월 3일이라는 날짜를 지나고 이 책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쩐지 늦은 인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해마다 이날을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시의 특성상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되돌려 놓는다. 기록이 아니라 울림으로, 판결문이 아니라 시로.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이다.
법정이라는 공간은 원래 건조해야 하는 곳이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판단만이 오가는 자리. 그런데 이 책 속 법정은 다르다. 그곳에는 울음이 있고, 끊어지는 숨이 있고, 70년 동안 미뤄졌던 한 문장이 있다.
“피고인 각 무죄.”
그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의 무게를, 시는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전한다.
헛, 참. 이라는 시의 구절이 마음 아팠다. 그 반복되는 숨소리 안에,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삶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무죄’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 이전의 시간이다.
죄 없이 죄가 되었던 시간, 말할 수 없어서 입을 닫아야 했던 시간, 그리고 법이 법이 아니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한숨이 나온다. 이 시집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훼손된 존엄을 다시 불러 세우는 과정이다.
이름을 다시 부르고, 목소리를 다시 듣고, 존재를 다시 인정하는 일이란 얼마나 귀한가! 그 귀한 일을 시라는 도구로 해낸 점 의미 있다. 고통의 은유라니!!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가 법정의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들이었다. 판결은 끝을 선언하지만, 시는 그 이후를 붙잡는다. 무죄가 선고된 뒤에도 남아 있는 삶의 고통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상실은 누가 위로한단 말인가?
“내 죄는 무엇인가요?”라는 문장은 특정한 시대의 피해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당함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간들, 혹은 외면했던 우리 자신의 침묵까지 함께 말해준다. 그래서 이 질문은 읽는 사람의 가슴에도 그대로 박혀버린다. 답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또 하나의 증언이 되면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시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시는 ‘기억하는 방식’이 된다. 기록은 사실을 남기지만, 시는 감각을 남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4·3을 ‘이해’하기보다 ‘느끼게’ 된다.
특히 인상 깊은 지점은, 이 시집이 끝내 완전한 해소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죄가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는 어떤 안도감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속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삶들이 조용히 자리한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계속 기억해야 할 이유로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의는 늦게 도착할 수 있지만, 기억은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듯하다. 그날, 거기서 정말 꽃은 피었느냐고.
그리고 독자가 대답할 차례다. 이제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조금씩 피어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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