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 한편, 박꼼삐, 리리브, 정비정, 이아람, 담장, 배예람, 이명희
늘 그렇듯 작가 이름은 역순을 써봤다. 표지에는 이명희 작가가 가장 앞에 있었다. (달리 작가, 한켠 작가님도 가장 앞에 쓰여보고 싶지 않으실까 하는 마음 )
난 청개구리니까..
그나저나 당신이 보는 그 세계 지금 괜찮은가요? ( 나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ㅋㅋ)
혹시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그게 당신이 아는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여기 그런 세계가 있다.
언제부턴가 '좋아요' 누른 것만 계속 피드에 뜨고, 내가 싫어할 만한 것은 알아서 피해 가는 알고리즘!! 그런데 '내가 싫어할 만한'이라는 문장 안에 함정이 있다. 봐야 할 것은 못 보고 지나친다. 가끔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피드에 화들짝 놀랄 때도 있다. "앗, 내가 이런 걸 좋아했던가?"
몇 년 전 리뷰에 이 세계의 적은 알고리즘이라고 쓴 적 있는데 그때 몇몇은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홉 작가의 단편 모음집. 표제작을 선정하는 방식을 잘 모르지만 어느 작품이 표제작으로 가도 무방할 만한!!
나의 생각 저울에 올렸을 때 아홉 편의 무게가 저마다 묵직하고 울림을 주었다. 뜬금 여기서 한 줄 평: 저마다 각 작가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소설, 물론 답을 안 해줘도 상관없다.
생각지도 못한 누나의 죽음을 맞아 누나의 과거를 마주하는 이야기,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관문 이야기, 함진아비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여자라서 차별받는 과거 원치 않은 결혼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를 만날 수 있다. '각각 리뷰를 다 쓰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쓰면서 매번 다 쓰고 싶은 욕심 생길 만큼 공부하는 마음을 잘 읽었는데 그중 속 시원한 얘기가 두 편 있었다.
특정인의 눈에만 보이는 전단지 vs 특정인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전단지!! 알고리즘 없던 시대에 우리는 불행하기만 했는가? 나 첨단과학 대우주 찬양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게 물어보고 싶다. 없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ㅎㅎ《당신이 보는 세계》 《신규 기능이 추가된 트위터에 가입하세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아' 많이 답답했니? (갑자기 서간체로 바뀐 리뷰ㅋ, 홍길동한테 할 말 많.....)
그런데 너는 길동이라는 이름이라도 있지, 여기 소설의 주인공은 여자라는 이유로 이름조차 없었어... 그래서 그녀를 '무명'이라고 불렀어.
그런데 신기한 것은 무명이에게 자유를 존재가 뱀이라는 사실,
나 뱀 좋아하는데, 뱀이 주는 신비!! 나아가 뱀의 해!!! 《외자혈손전》
살해의 동기란 자고로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잔혹한 살인마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 정도로 아름다워야 했다. 와이더닛의 정점을 수놓는 존재. p49
추리물 형사물 범죄소설 스릴러 읽는 모든 이유가 살해 동기가 궁금해서인데, 요즘 작품들을 읽으며 살해 동기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다. 읽다 보면, 고작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다니에 이르게 된다. 와이더닛에 대답해 주는 소설이 얼마나 되던가...
그래서 최근 내가 찾은 방법은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사형수의 글, 혹은 사형수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기에 이르렀다. 도무지 사람을 죽이고 싶고 행동에 옮길 만큼 느끼는 살의는 뭔지.... 궁금해서.( 이런 걸 왜 궁금해)
덧: 추리, 스릴러, SF, 판타지를 한꺼번에 만나다니!! 최근의 장르문학은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없고 마침내 희미해진다.
빠른 성공 혹은 정답을 강요하는 시대에 이런 모호함은 좋다.
약 먹고 쓰는 리뷰라 작성자가 두세 명쯤 되는 듯한 다중이 리뷰
이런 단편 모음집 마지막에 평론가님의 해설을 읽으면, 아~ 소설은 이렇게 읽어야 하는구나를 배우게 된다.
이전에 내가 했던 감상평은 쪼그라드는 기분. 그러나 친절한 평론가의 가이드를 매번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리뷰를 다 쓰고 읽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