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협찬 도서를 정성스럽게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푸른사상 (펴냄)
서울대 《현장 문학 읽기》 세미나 팀이 2024년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 315편을 검토 후 선정한 11편의 소설 모음집!!
바로 본론으로 ㄱㄱ~!!!!!!
김병운의 《만나고 나서 하는 생각》 열한 편의 소설 중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다..... 리뷰까지 다 마무리하고 다시 보니 이 분은 2023년에도 언급되신 분이다.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궁금했다. 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게이들이 쓰는 용어 검색해 봤다. #일틱하다 이런 말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단어를 알게 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을 존재로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중요하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더 늦 기 전에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진짜 사랑을 해보라고, 너는 그래도 돼 p21
(거의 사랑하는 것과 진짜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진짜 사랑을 했던가, 거의 사랑인가 )
잘 봐, 나는 너를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것처럼 너의 비밀도 모르는 척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의 비밀은 안전해. 눈이 마주치거나 마주치지 않은 채로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p15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 모음을 읽기 전에 문제적인 소설은 사회 이슈를 드러낼 뿐,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그리고 난 열 한편의 리뷰를 써야 할 것 같았다. 한 작품, 작품마다 읽고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리뷰 핑계 삼아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냄으로써 이 짧은 소설의 주인공이 죄씻이를 하듯이 세상을 향한 나의 데프 보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고운의 《여름이 없는 나라》 하우스 메이트인 미주와 덕희는 이십 대 후반의 블루칼라 직업군의 여성이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낼 만큼 전문성은 없는 기본적인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세대 여성들, 소설을 좀 더 확대해 보면 이들은 익명성으로 상징될 수 있겠다. 미스 리, 미스 김으로... 우리 어머니 세대로 올라가면 어쩌면 공순이라 불리던 분들,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던 여자들.
'활주로처럼 불빛이 박힌 공장'에서 주야를 번갈아가며 일하는 저임금 노동은 이미 그녀들의 손을 떠나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되었거나 혹은 철폐된 것이 아닌가!
물류센터 고객 만족 센터에서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고된 직업. 성인 용품 바이브레이터를 이미 개봉하여 사용 후 교환, 환불해달라는 여자.... 고객으로 서술되는 인물 4884의 정체성도 뚜렷이 드러난다. ( 사실 그러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일뿐...)
무더위로 숨 막히는 것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 젊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를 받아줄 곳은 있을까... 슬프다. '여름'을 내 방식대로 이해한 게 맞는다면 여름이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사라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리고 이들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매일 놀라워했다. 정말 가느다란 끈 하나라도 놓치는 순간 그 사람의 흔적은 영영 사라진다는 사실은 왠지 압도적이었다 p51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 FtM 탑 수술 이후 남자로 패싱 되기 시작한 주인공, 사지 연장술을 해서라도 좋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오스틴, 여기서 좋은 여자란? 페미가 아닌 여자를 말한다. 두 남자가 대비되어 보인다. 그들이 추구하는 남성성은 다르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거부하고 트랜스젠더 남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주인공, 그가 사회에 잘 안착하려면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호모 포비아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중 일부 사람들, 그들에게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이성애, 비장애 남성을 의미한다. 정상 남성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모두 하위 장르다.
사지연장술, 이런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충격!
다들 예쁜 걸 좋아하니까요
맞아요. 옷도 사람도 그렇죠 p77
《스무드》 성해나
스토리 자체로도 충분히 읽는 재미가 많은 소설, 이 책의 거의 모든 단편들이 그렇다. 물론 소설을 재미로 읽는 편은 아니라서 (이런 말 하면 재수 없다고 누가 내게 ㅎㅎㅎ) 소설에서 배울 점을 찾는 중이다. 성해나 소설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런 마인드로 읽는 편
해설을 쓰신 김남혁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소설 읽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인물 간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해나 소설에서 주인공 듀이 한국계 미국인, 입양아인 어머니 그리고 한국에 치를 떠는 아버지, 가족이라는 이름의 삼자의 거리감은 오히려 주인공이 한국으로 잠시 왔을 때 길에서 만난 친절한 한국 노인 미스터 김과의 거리보다 멀어 보인다.... 스무드한 세상이 가장 까슬까슬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런가?!!
심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소설 최미래의 《과자집을 지나쳐》
버려지고 유기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나는 버려진 적 없음에도 늘 불안하다. 이 소설 속, 한 번도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엄마가 있다. 얼마나 엄마 노릇을 못했는지 다 쓸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 가끔 화가 난다. 엄마 노릇 못하는 여자들은 많은데 왜 아빠 노릇 못하는 남자들의 죄가 되지 않는가?! 한 발 더 나아가 적고 싶지만 청소년들도 볼 것 같아서 참겠다.
남자들이 싸지른 * *
같은 사랑을 하고도 왜 늘 책임은 여자에게 있는가? 아하! 열 달 뱃속에 품었던 죄? 최근 읽은 소설에서 남자에게 버려진 혹은 남자와 헤어진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 반대의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런 걸 궁금해하는 나는 어느 우주에서 온 사람인가!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버려진 여자가 혼자 딸 키우는 소설을 나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폴더 안에 처박아둔 이야기)
예소연 《작은 벌》 주인공 이중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러나 평범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AKA 신숙자 《이서수》 이 작가에 대한 편애를 감출 수 없다. 데뷔작인 『당신의 4분 33초』때부터 좋아했다. 이후 이 분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가장 마지막에 읽으려고 아껴두었다.
우리의 페미니스트 딸들이 평등을 외칠 때 그 평등은 우리 어머니들에게도 적용되는가? 이런 걸 물으면 나돌 맞으려나?
평생을 시부모, 남편,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이제 본인 노후를 책임져애 하기에 요양보호사로 남의 기저귀를 치우는 우리 어머니들. 무당이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숙자 씨, 아니 숙자 님 나랑 같은 마인드다 ㅎㅎㅎ(나 무당을 종합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어떤 분은 존경한다. 참고로 나는 기독교인이다. )
자낳괴, 이거 요즘 내가 몹시 자주 하는 말인데 이서수의 소설에서 만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ㅎㅎ
엄마도 알잖아, 내리사랑이 무섭다는 거. 어떤 사랑은 너무 커서 무섭고, 어떤 사랑은 작아서 무섭지 p218
최근 한국문학의 변화의 흐름 중 눈에 띄는 부분인 페미니즘/ 퀴어 문학의 흐름은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1980 혹은 1990년대라는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살아온 여성 작가들은 전혀 다른 공간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통하는 정서에서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놀랍다.... 여성 작가들의 행보. 물론 동시대 젊은 남성 작가들의 작품도 놀랍다. 이전의 세대와 사뭇 다른 감성들, 세상을 보는 시각 그 날카로움, 도발적인 역진성에 놀란다.
♧올해 초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 이후, 2025년도 여전히 '여풍' 강세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기사들, 특히 중장년층 여성들이 투고를 많이 하다 보니 당선율도 높은데 이 비율에 대해 보도되는 기사를 찬찬히 읽다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방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작품들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게 아닌가 싶은데, 이런 현상에 대해 마초 혹은 남성 작가들의 큼직? 한 서사에 향수를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 그럴수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의 세상이다. )
♧차 마시고, 밥 먹고, 정원을 가꾸고, 친구를 만나 수다 떠는 일상의 소소한 일이 어찌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는지, 도무지 그런 글에 문학성이 있냐는 문장에 빵 터졌다. 그분께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학이란 뭔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