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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서재
  • 영이 02
  • 김사과
  • 11,700원 (10%650)
  • 2010-12-06
  • : 1,14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영이를 읽었었다. 작품의 원 제목이 영이이다. 그런데 표제는 숫자 02이다. 내겐 영이라는 한글 제목이 더 나을 것 같다. 영이라는 작품이 주는 충격과 그 이름이 주는 소박함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이를 읽은 당시의 인상은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체와 어조와 어투가 신선하면서도 불온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02를 읽어보니 특이하다는 데에는 여전히 공감하지만 난해하지도 거부감이 들지도 않았다. 감정이 지나치게 과잉되어있고 폭력이 난무하지만 작금의 현실이 그러니 그때보다 훨씬 수위가 낮게 느껴진다. 갈수록 현실이 극악무도하니까 점점 무디어지고 웬만해선 놀라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이런 영이 류의, 김사과 류의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폭력적인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분노와 울분을 승화시키기보다는 폭발하는 이 작품들이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졌고 점잖게 대응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점점 단순화 또는 노골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화, 승화, 이성과 논리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지성이 이제는 되려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당장 이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이 그렇고 사람들끼리의 그악한 혐오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영이

  영이는 2005년 창비 신인소설상 당선작이다. 그때 엄청난 문제작으로, 화제작으로 작가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지금 봐도 여전히 영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초등학생인 영이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만들어낸다. 일종의 분열이고 정신적 해체이다. 

  영이는 그러나 '나의 영이라는 말이, 혹은 영이의 영이라는 말이 성가시고 헷갈려서'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순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순이가 영이 대신 부모의 싸움을 보고 또 마지막에는 영이를 지켜본다. "피투성이가 된 영이가 흙먼지 가득한 황갈색 땅에 혼자 누워 있었다. 남김없이 짓밟힌 영이는 빨갛게 웃고 있었다. 다음 순간 짙은 노을이 순식간에 영이를 삼켰다."


  과학자

  고추장을 연구하는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고추장을 연구하느라고... 나는 매일 고추장을 먹고 여전히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 계속 고추장을 먹고, 여자친구인 한나에게 고추장을 잔뜩 바르고... 여자친구인 한나는 거식증에 걸려 있었다. 불쾌해지고 역겨워지는 이야기라 읽고 나서도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나의 좁고 긴 방

  젊은 세대의 절망과 욕망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물질적인 욕망은 현대인에게 있어 저주스런 주문과 같다. 이나는 옷이 필요하다. 옷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한다. 이나의 부모는 공장에 나가지만 생활은 늘 어렵다. 이나도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원하는 옷과 구두와 가방을 사려면 어림도 없다. 이나는 승용차 아래에 떨어진 지갑을 주우려는 할머니를 돕는 척하다가 그 할머니를 죽이고 지갑을 가로챈다. 겨우 칠만오천원이 들어있던 할머니의 지갑.

  이나에게는 야망이나 비전이 없다. 4년제 사립대학에 다니는데도 왠지 자신의 미래는 강남의 번쩍이는 빌딩에 있는 고급스런 사무실이나 집이 아닐 것 같다. 자신은 고소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풍기는 경기도의 쇠락한 소도시에서, 두부공장에서 장화를 신고 일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나는 죽은 할머니와 매일 대화를 한다. 환하고 밝은 햇살 비추는 저 밖의 세상은 이나의 세상이 아니다.  


  한편한편의 내용들이 폭력적이고 참혹해서인지, 내가 지금 피곤해서인지 계속 쓰고 싶지 않다. 그만 눕고 싶다. 벌써 새벽 두 시가 되어간다. 대강... 비슷한 내용들이었고 작품 자체는 다 좋았다. 하지만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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