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레아의 서재








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불볕더위와 습한 대기로 8월 내 괴로웠다. 스토너를 읽는 중에 쓰고 수정하고 침 맞으러 다니고 금욜 저녁엔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어쩌면 쓰는 중에 스토너를 읽었다라고 할 수도 있고 일상이 우선인 가운데 가끔 스토너를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두권씩 읽고도 리뷰를 멋지게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아주 느리게 밑줄을 긋고도 소감을 쓸 땐 첫 문장이 막힌다. 그렇다해도 스토너는 내게 일용할 만한 양식이 될 정도로 배울 게 많았다. 물론 나는 언제나 배운다. 무지가 나의 토대이니 그럴밖에, 잊어먹어서 탈이지만.

  

  일단 스토너는 영웅적인 인간이 아니다. 또한 루저도 아니고 특이한 인물도 아니다. 스토너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우연히 영문학을 접하게 되고(2학년 학부 교양과목으로 영문학 개론 강의를 듣게 된다) 괴짜인 아처슬론 교수의 관심을 받게 된다. 교수가 스토너에게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한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스토너는 농부가 되려던 길을 버리고 영문학자가 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일견 고지식할 정도로 학자로서의 삶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는 평생 조교수였으며 어떤 권력이나 특별한 특혜도 없는, 성실하고 충직한 생활인으로써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그의 인생엔 특별한 반전이나 빛나는 상찬이 주어지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냉랭하게 시작되었으며 둘은 어떤 우정이나 사랑도 나누지 못했다. 이디스는 스토너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그를 비판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는 것 같았다. 작가는 스토너의 심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었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만, 표피적으로만 다루었다. 이디스가 왜 그렇게 처음부터 꼬여있고 못되게 구는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누구나 나 아닌 다른 이의 마음을 알기는 어렵다. 또 이디스의 마음까지 일일이 서술했다면 400페이지의 장편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이디스의 책략으로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와도 멀어지게 된 스토너는 대신에 맹렬히 학문에 정진하며 외로움과 고통을 이겨낸다. 학교에서는 로맥스 때문에(영문학장) 불공정한 일을 당하고 집에서는 아내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스토너는 그러다 캐서린을 만나게 된다.

  둘의 사랑은 온전히 일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간이었으나 로맥스는 스토너를 몰아부친다. 스토너는 캐서린과 헤어지게 되고, 갑자기 늙어버린다. 완고하면서도 학문에의 열정만 남은 조금은 기괴한 교수가 그는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구부정해지고 늙은 스토너를 스토너 영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학교 안에서 자기들끼리 뒷담화를 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의 과제를 일일히 살펴보고 그것에 일일이 의견을 달아준다. 그리고 로맥스가 주도한 만찬에서 그는 퇴직하는 명예교수로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된다. 

  이디스는 그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눕게 되자 그의 곁을 지키며 안타까워 한다. 그레이스가 찾아와 아주 어릴 적, 서로 친밀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눈빛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의식의 끝에서 자신의 저서인 책을 들고 숨진다. 

   인내와 성실로 불공평한 삶을 견뎌낸 사람이라는 점에서 스토너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표자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불가능한 일을 도모하거나 용기로 자신의 처지를 바꾸는 사람도 위대하지만 스토너처럼 자신의 일에 헌신하기를 열정적으로 그치지 않은 사람도 위대하다. 또 그 위대함은 안타까움과 슬픔이 깔린 위대함이고 패배를 전제한 승리라고 할 수 있어 마음 아리다. 

  

  스토너의 삶은 가치있는 것을 향한 여정이었지만 이유없이 배반당하고 무시당하면서 얻은 실패 또한 그만큼 컸다. 

  신형철 문평가는 이렇게 썼다.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많은 스토너의 삶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다시 다른 스토너들이 대물림을 하고 있으리라. 


  소설 말미에 스토너의 죽음에 이르는 혼미하고 아득한 의식의 과정이 아주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죽어가는 스토너의 의연하면서도 평안한 정신이 감동적이었다. 빨간펜으로 밑줄을 그었고 몇 페이지에는 붙이는 메모장을 뜯어 붙였다.  이 책이 작가 사후 50년 뒤에 유럽에서부터 인기를 얻어 재평가되었다는 일화가 사뭇 이 작품의 경이로움을 말해준다. 주인공의 심리가 완벽하게 묘사된 책이라서 심리묘사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수작이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