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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서재

  눈으로 하는 독서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책을 읽자면 몸과 눈이 피곤해지고 어느 순간 뇌세포가 무뎌지면서 마비될 것만 같다. 소설이라고 해서 쉽지 않기는 어떤 학문적인 서적과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화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은 기실 작가의 사유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마다 이해도가 다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창의적이고 남다른 사유와 그 사고에의 깊이가 일반인들보다 깊고 다채로워 독자로서는 집중하고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 집중과 몰입을 내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독서가 힘들 때, 유튜브로 단편소설을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대부분 최신작보다는 좀 지난 작품들을 읽어주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좋은 목소리로 단편 하나를 누군가가 한 시간 안팎으로 읽어준다. 누워서 귀로만 들을 수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 파피루스의 책읽는 하루라는 유튜브에 구독을 눌러놓았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친히 하는 독서는 패스하고 동영상을 세 개나 들었다. 

 서하진의 '농담' 과 하성란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옆집 여자'


서하진의 '농담'

평범한 한 주부의 자아찾기가 주제일 것 같다. 매일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하는 것에 지친 여자가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채 회사를 관두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화가 나 집을 나가 한참을 들어오지 않는데, 아내는 남편에 대해 처음으로 헤어질 생각을 가지게 된다. 절대 이혼할 수 없다던 그녀가 이혼조차도 가능한 한 방법으로 생각하게 될 줄이야. 

친구가 너도 그럼 집을 나와서 본때를 보여주라고 하며 자기 집에서 잠시 지내라고 한다. 그런데 이웃집 남자가 공연이 없지만 연습삼아 그녀에게 마술을 보여주고... 그녀는 자기도 마술을 배울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설레는 생각을 품는다. 그녀는 남편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익히고 있는 중. 남편을 만난 여자가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어 상가 건물 위에 자리한 집 하나를 구입했다고. 그녀는 입지 않던 화려한 옷과 휘황한 보석을 차고 있다. 남편은 태도가 변하더니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자신들이 함께 계속 살아갈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농담!!! 삶은 어느 순간 농담으로 진실을 드러낼 때가 있다. 


하성란의 '기쁘다 구주 오셨네'

  3년의 연애 끝에 약혼한 여자가 처음으로 자신이 결혼할 남자에 대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의심하지 못했던 약혼자의 끔찍한 정체. 그녀는 약혼자의 생일에 나타난 (14년만의 모임이라고) 세 명의 남자와 생일 파티를 하게 되는데, 그녀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네 남자 중 누구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날밤,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는 누구일까.    

  그날밤 그들 중 은행원인 남자가 만취해 15년 전의 일을 발설하고 마는데, 그녀는 한쪽에서 자다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15년 전, 한 소녀가 그들의 강제에 의해 그들을 따라왔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네 명의 남자는 그 사건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쓰레기인 그들의 우정은 그런 것이었다.

  약혼녀는 남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자기 뱃속의 아이의 아빠를 찾으려 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에게 어떤 성적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헤매다 성당으로 들어간 그녀가 성전의 뒷쪽 의자에 앉는데, 그러고 보니 내일이 크리스마스다. 성가대의 기쁘다 구주오셨네,라는 성가가 들려온다. 

  책을 읽어준 파피루스가 마지막에 주관적 해설을 덧붙이는데, 아마 이 약혼자가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은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친구들과 계획적으로 벌인 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여자는 간혹 잠을 깨기도 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들의 행위를 얼핏 본적이 있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약혼자가 그녀의 술에 무언가를 탔겠다 싶은 것이다. 그런 일이 오늘 밤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하지만 그런 치졸하고 파렴치한  범죄자와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 구세주가 오신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말도 피해자에게는 함부로 뱉어내서는 안되는, 죄악에 가까운 말이다. 오! 주여!


하성란의 '옆집 여자'

  옆집 507호로 이사온 여자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녀가 그런 짓을 하는지. 나는 507호의 친절과 명랑함에 이끌려 그녀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결과는 자신이 완전히 바보가 되고 환자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다. 그녀는 자신이 점점 더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게 507호 여자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간의 그녀의 교묘한 행위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아이도 자신보다 그녀를 너무 좋아하고 따른다. 혹시 나는 그녀에게 남편과 아이마저 뺏기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야 그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들으면서 하성란이나 서하진 작가의 필력에 신뢰가 갔다. 평범하게 시작된 전개가 차츰 불안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는 문체가 좋았다. 그러나 요즘 단편소설들의 흐름과 비교해보니 이전의 작가들은 확실히 단선적인 플롯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임현 작가님에게 플롯을 배웠기 때문에 금방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더 확장시켜보면 요즈음의 젊은 작가들은 레이어드를 여러겹 쌓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임현 작가, 지금 거의 다 읽고 있는 김지연 작가, 또 다른 작가들이 여러겹의 인물과 공간과 사건을 만들어 배치하는 것은 단편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진화된 단편의 양상인 것 같다. 

내일은 김지연 작가의' 내가 울기 시작할 때'를 리뷰해야한다. 내게 화이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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