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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헨리 제임스는 현대 영미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작가로, 전통적 리얼리즘 사조가 지배하던 19세기 미국 문단에서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의식 세계를 언어로 형상화해 내며 후일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책날개에 적힌 글을 옮기다가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에서 멈췄다. 헨리 제임스의 유럽 여행기 같은 단편이 이 책에 꽤 있기 때문이다. 헨리 제임스가 겪은 유럽에 대한 인상과 인식이 소설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짚어내는 것은 아주 유용한 일일 것이다. 8편의 단편 중에 나는 4편만을 읽었는데, 그 4편 전부가 유럽이라는 대륙에 대한 동경과 또 그 정반대의 유럽에 대한 환멸이 주요한 소재로 취급되고 있었다. 


'네 번의 만남'에서는 유럽을 여행하던 한 여자와 만난 '나'가 그녀의 짧은 유럽에서의 체재기간 동안의 어이없는 상황과 미국으로 돌아와서의 그녀의 이후의 삶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녀는 유럽에 대한 동경과 그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했으나 어리석을 정도로 동정심이 많고 선한 성격으로 인해 닳아빠진 친척에게 속고 끝내는 정체가 모호한 프랑스 여자를 백작으로 받아들여 하녀같은 삶을 살다 스러져갔다.

 '나'는 그녀와 네 번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전 생애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스케치할 수 있다.  젊고 아름답고 너무나 선량하고 청순했던 그녀를 유럽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만남, 파리에 살고 있는 친척에게 어이없이 사기를 당해 유럽 여행을 포기하게 된 파리에서의 두 번째 만남, 유럽여행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살던 시절의 우울하고 창백한 그녀를 만나게 된 일,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어떤 동경도 희망도 없이 하녀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잠시 보고 뒤돌아 나와야 했던 일.

 유럽이라는 이상과 그 이상이 안겨준 수치스런 삶을 저항없이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통해 미국인이(헨리 제임스가) 느끼는 극과 극의 유럽을 독자도  실감하게 한다. 우리의 삶도 순진한 한 시골 처녀의 순수와 동경이 치졸하고 가학적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사기를 당하는 것과 일면 흡사해 보여서 안타까웠다. 


'데이지 밀러'는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밝은 미국인 처녀 데이지의 로맨스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의 길이도 중편정도로써 데이지 밀러의 심리와 행위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힌 것처럼  선명하다. 데이지는 남들의 구설을 염려하지 않는 지극히 밝고 쾌할한 아가씨이다. 그녀는 자신이 순수한 것처럼 타인들도 그러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밝고 환하고 맹목적이고 순정하다. 그런 그녀가 세련되고 허식적인 유럽땅에서, 그 이면은 추하고 약아빠진 세계에서 과연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헨리 제임스는 데이지 밀러를 미국인으로 작품 속 화자를 유럽인으로 설정하고 데이지를 거의 성녀화하고 있다. 너무나 밝고 솔직하고 아름다워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성녀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출생은 미국에서 했지만 유럽에서 삶의 대부분을 산 헨리 제임스가 써야 할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데이지 밀러는 소설의 주인공으로서는 한번쯤 다루어 볼 만한 인물인 건 확실하다.  


'실제와 똑같은 것'은 모델이 되기에 부적합한 부부를 만난 화가가 화자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실제와 똑같다는 것은, 그리고자 하는 인물상에 너무나 똑같이 들어맞는 바람에 그 전형성은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매력적인 여타의 이미지는 창조하지 못하게 되는 모델을 가리킨다. 잘 생기고 훤칠하며 전형적인 느낌의 부부는 그 외적인 완벽함 때문에 인물의 이면에 깃든 생동감과 고뇌 등이 표현되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화가는 끝내 이 부부를 내치고 마는데 그 과정까지가 참으로 화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사의 회전'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이다. 한 시골 아가씨가 엄청난 부잣집의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다. 남매를 둔 젊은 아버지의 묘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이 용기있고 무모한 아가씨는 고풍스런 성채에서 살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교사는 점점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고 자기가 오기 전의 가정교사였던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그 성안에서 일하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지는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두 아이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이 불길하고 악마적이기까지 한데...  

이 작품은 수많은 서로 다른 해석이 난무하다고 한다.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상력과  추측으로 작품을 달리 보고 있기 때문일 텐데, 작품으로써의 매력은 있겠지만 왠지 아무것도 모르고 기만당한 느낌 또한 들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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