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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차페크는 처음 읽는 작가이다. 그는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국민작가'라고 한다. 희곡, 에세이, 비평, 동화, 번역에 이르기까지 그는 장르를 불문한 작품들을 썼다. 

  또한 고국인 체코가 독일에 침략당하자 동맹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작가들의 탄원서를 작성하였으며 정부 성명을 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면으로는 조국을 위해 심혈을 다 쏟은 작가였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재차 지목되었지만 독일이 두려워서 스페인에서 상 주기를 꺼렸다는 설이 있다고도 한다. 

  1938년 12월 25일, 망명제안이 있었지만  고국인 체코에 머무르던 그는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평생 동지였고 보호자였던 그의 형 요세프 차페크는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그가 죽은지 7년 후인 1945년 4월 사망한다. 

  젊은 나이(48세)에 죽은 카렐 차페크는 그래도 한편으로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문학적 소양이 있는 부모와 할머니까지 가문 자체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의 형이나 누나 또한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유복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차페크를 보며 그가 너무 빨리 죽은 것은  아닐까 싶다가 돌연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 전부를 완전히 발산했다. 아주 젊어서부터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원하던 분야에서 맘껏 펼쳐냈다. 그렇다면 그가 48세에 죽었다고 해서 너무 이른 죽음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80살에 죽어도 자신의 재능 한 조각도 표출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평생을 낯선 길에서 두리번거리며 절망하다 자신이 짊어지고 온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일에 쏟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넘쳐난다. 그에 비하면 그는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에너지 전부를 발산하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다 했으니 그만하면 짧기만 한 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삶이란 시간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형태와 그 내용으로 재고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절한 천재들을 잠시 생각해보니 무한정 아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럽기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일에 투신하고 거기에 인생을 걸었던 그들의 짧은 생은 그만큼 치열하게 남들보다 몇 배 더 열렬히 살았다는 뜻도 되니까.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기력은 소진되고 에너지는고갈되었다는 뜻도 될 테니까... 

  

  작가 이야기는 이만하고 '평범한 인생' 책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전직 공무원이었던 남자가 죽었다. 그는 동맥 경화로 일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한 점 오류 없게 하기 위해 정리하고 또 정리하던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서랍과 자신의 유품이 될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시간이 남았고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고 평범한 생을 살았노라고 썼다. 어려서부터 결혼하고 승진을 거듭해 고위직 공무원이 되었을 때까지를 기록하고 보니 정말 성실하고 조용하게 산 평범한 사람의 전형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글이 끝나가려던 즈음에 그는 자신이 쓴 글이 온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짓말을 해야 할 사람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의 솔직한 내면이 그에게 말을 건 것이다. 

  뒤돌아보니 표피적으로는 평범한 생처럼 보였지만, 실제 그렇게 살았는 줄 알았지만 그의 내면은 그렇게 평범하고 고요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는 한때 열정적이고 타락했던 시절이 있었고 숨겨져있었지만 어둡고 더러운 것에 빠져들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그의 내면 깊숙이 숨겨있던 다른 자아들이 줄줄이 나타나자 그는 굉장히 복잡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일단 그의 가장 주된 자아는 평범한 자아(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조용한)였고 이것은 그를 공무원으로 사는 데에 적합한 성향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자. 인간이 그토록 선하고 조용하게 사는 것이 가능한가. 그는 평범한 자아를 내세우고 살았지만 사실 그 근저에는 억척스런 자아가 나름의 노력과 뻔뻔할 정도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결혼과 승진, 어린 시절 공부를 잘했던 이유도 사실은 억척스러운 자아의 성취였다. 그리고 이 억척이만큼 중요한 다른 자아도 있었는데 그건 우울한 자아였다. 이 자아는 그를 우울하게 하고 걱정하게 하고 두려움 때문에 큰 일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한 용기를 용인하고 낭만적인 취향에 호응하여 그를 섬세한 인간이 되게 했다. 주인공은 이 세 자아가 가장 주된 자아였다고 시인한다.

  그리고도 젊은 시절 한때 시를 썼던 그의 내면에는 시인이 있었고, 늘 무언가를,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낭만주의자가 있었으며, 전쟁시에는 철도역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지위 때문에 알게 되는 철도상황에 대한 비밀을 레지스탕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집시 여자아이를 따라 가 캄캄하고 지저분한 집 안에서 문을 잠그고 기이한 행동을 했던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편안해했던 자아, 성당 앞 마당에서 지나쳤던 거지처럼 모든 걸 버리고 유랑하고 싶던 거지 자아도 그의 내면엔 꺼지지 않고 살아있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죽음을 맞아들이는 시간, 그는 그 거지 자아가 아직까지 자신에게 남아있었고 마지막 순간에 그 자아가 자신의 전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고보니 자신 안에 수많은 자아가 있었고 그 자아들 중에 어떤 다른 자아가 자신을 지배했다면 자신은 다른 사람으로, 공무원이 아닌 다른 신분으로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뿐이 아니라 우리가 겉으로만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수많은 자아를 갖고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이지만 동시에 다른 나일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나이면서 다른 사람이며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면서 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의 생 전부를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수많은 다른 자아들을 이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추수감사절에 교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각기 내 내면에 깃든 하나의 자아들과 상통하고 있고 그들도 그들 내면의 자아들이 거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연관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에 앉아있는 사람들 전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하나일 수 있다. 그들은 나를 대표하고 있으며 나도 그들 중의 누군가의 이루지 못한 자아를 대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전부는 서로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철도청의 고위 공무원인 그는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을 쓴다. 

  "이제 시간이 되었군. 객차의 문이 철커덕 잠기고 모두들 거수경례를 한다. 출발. 기차는 전철기를 지나 어둠 속으로 무한궤도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잠깐 기다려. 저기에는 사람들이 가득 탔다. 마르티네크 아저씨가 앉아 있고, 주정뱅이 대위가 구석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얼굴이 검은 소녀가 창문에서 코를 들이밀며 혀를 쭉 내민다. 마지막 객차의 짐칸에서 선로 제동수가 깃발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기다려, 나도 함께 가겠네!"


 이 책을 읽고 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있던, 또는 간혹 표출되는 또다른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이 작가처럼 나 자신의 주된 자아와 보조적 자아들을 써 보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테지만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덟 개의 자아를 발견해냈는데, 쓰다보니 여덟 개의 자아도 많은 게 아니었다. 자아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성향 정도로 고쳐서 말해도 되겠다

 일단 평범한 자아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성향이고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기 위해 연기를 하거나 연출을 하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주인공처럼 억척스런 자아 또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성공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성향일 테고, 우울한 자아 또한 누구에게나 내면에 깔린 성향일 것이다. 성공이라는 게, 인정받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고 사랑이나 행복이 그렇게 가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 세 자아를 가장 많이 언급할 것 같지만 조사를 해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 

 그래, 어쨌든 나는 내게 아주 중요한 성향들을 끄적여보았다. 

 평범한 자아, 노력하는 자아, 우울한 자아, 불안한 자아, 꿈꾸는 자아, 굴종하는 자아, 냉소하는 자아, 용기있는 자아, 질투하는 자아, 허무주의에 빠진 자아, 거지 자아. 11개에 이른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배우는 게 참 많지만 차페크의 이번 책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 또 며칠 지나면 완전 까먹겠지만....

  코로나로 아팠고 후유증이 아직도 끝나지 않아 모든 면에서 능률이라곤 없다. 하긴 언제나 매사에 능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 지금만 이런 건 아니었다. 어쩜 내게 가장 주된 자아는 평범한 자아와 더불어 나태한 자아가 아닐까 싶다. 

  '돈키호테'를 택배시켰고(기대가 정말 크다), 그 후에는 다시 차페크의 철학3부작 중의 하나인 '호르두발'이나 '별똥별'을 읽어야겠다. 독서야말로 참 스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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