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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레슨
  • 이언 매큐언
  • 19,800원 (10%1,100)
  • 2025-11-10
  • : 19,355

이언 매큐언의 [레슨]을 읽었다. 저자의 일생에 걸친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소설이라는 문구에 깜빡 넘어가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기 시작했음에도 완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이기도 하지만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주인공 롤런드 베인스의 일생 전반과 그와 관련된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등장과 연이은 사건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롤런드가 살아온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서구 유럽이 전쟁을 거치며 수반된 다양한 정치적 이념에 대한 논쟁과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사전적 배경지식이 부족했던 터라 중간 중간에 텁텁한 뭔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인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롤런드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겪은 기막힌 인생의 이야기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소설의 제목이 [레슨]인 만큼 표지에 담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소년의 모습은 주인공인 롤런드에게 있어서 피아노 레슨이 얼마나 큰 의미가 담긴 사건이었는지 시사하고 있다. 14살의 피아노 레슨을 받는 롤런드에서부터 시작하여 70대 후반에서 노년을 맞이한 할아버지 롤런드에게 이르기까지 장구한 시간을 훑고 있기에 어찌보면 회고록 같은 성장 소설의 모습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손녀에게 저녁식사 식탁의 옆자리에 앉기를 부탁하는 할아버지 롤런드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마치 아주 오래된 친구, 형제, 부모를 떠나보내는 듯한 애틋한 서글픔이 밀려왔다. 결국 채 백년도 되지 않는 삶이란 무엇인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에는 그저 하나의 점과 같은 시간을 온전히 성실하고 선하게 살지 못하고 온갖 상처를 주고받으며 미워하고 서운해하며 낭비한 시간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심장을 후벼파는 자책과 회한의 시간으로 침잠케 해 잔인한 심판의 순간으로 돌아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가족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혈육이라는 그 질긴 끈 하나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한다고 자만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은 기꺼이 물어보고 대답을 들을만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까지의 지난한 기다림을 아까워했다. 적절한 타이밍은 지나가고 이제 다시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이토록 멍청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토록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온 것인가? 가슴을 치며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은 순간 순간 멍해지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든다. 


롤런드가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이리 저리 주저하며 돌고 돌아 결국 대프니와의 결혼을 약속하고 60대의 안정된 삶에 진입하려던 그 순간 대프니는 아주 나쁜 소식을 전한다. 운명의 장난이라는 진부한 표현처럼, 영화속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인상이 저절로 구겨지는 전형적인 클리셰처럼 대프니는 암4기이고 온 몸에 전이가 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한다. 롤런드의 삶은 어찌 이리 기구한 것인지라고 한탄하기에는 그가 전쟁 고아도 아니고, 부모에게 가정 폭력을 겪은 유년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어떤 엄청난 사고로 신체에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아니기에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자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가 대프니와 보낸 마지막 몇 개월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도 슬펐다. 대프니와 짧은 여행을 떠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겠다는 대프니를 옆에서 지켜보는, 하루하루 쇠락해가는 사랑하는 이의 무너지는 모습을 묵묵히 견뎌내는, 그리고 대프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쇠해진 몸을 이끌고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순간의 장소로 떠나는 모습은 우리 삶에 주어진 숙제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대프니가 레이크디스트릭트의 버드 하우 별장 근처의 다리에서 롤런드에게 고백한 아버지와의 일화는 우리가 가족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오고 오해를 풀 수 있는 기막힌 기회인지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난 아버지에게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물었어.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이 돌본 부상병에 대해서까지 설명하고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돌아가면 결혼해서 언젠가 나 같은 딸을 갖자고 했대. 롤런드, 난 아버지에게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이버진 굉장히 과묵한 분이었거든. 난 아버지가 사랑이는 말을 입에 담는 걸 본 적이 없었어. 그때 사람들은 자식에게 그랬지. 아버지에게 엄마를 사랑했다는 말을 듣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불타올랐어. 

여기 당신과 함께 있으니 너무 행복해. 이 두 행복의 순간이 내 존재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어. 난 당신이 내 유골을 가지고 혼자 여기 와줬으면 좋겠어. 여기에 혼자 와서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해줘.(590-591)"


그래서였을까. 롤런드는 대프니의 유골을 쉽게 놓지 못한 채 7년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결심이 선 순간 어이없는 방해꾼 대프니의 전 남편 피터가 나타나 고요한 회상의 시간을 엉망으로 만든다. 피터에게 밀쳐져 강가에 처박혀 갈비뼈에 금이 가는 상처를 입은 채 피터가 대프니의 유골을 마구 뿌려대는 상황에도 롤런드는 누가 뿌리던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대프니를 떠나보낸다. 온몸이 젖은 채 갑작스러운 타박상에서 밀려오는 칼날같은 통증을 견디며 롤런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제 자신의 생 또한 끝나감을 느끼며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리움과 외로움에 항복 선언이라도 했을까?


노년에 이르러 롤런드는 마치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또 다른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다. 누나의 남편, 그리고 형을 보낸다. 세속적인 방식의 장례식에서 롤런드는 제임스 펜턴의 시 '앤드루 우드를 위하여(For Andrew Wood)'를 낭송한다. 


"그리하여 죽은 자 더는 슬퍼하지 않고

우리는 보상할 수 있어

죽은 친구들과 산 친구들 사이에

약속이 맺어지리.


세월이 흐르면 

예전처럼 관대해지리.(642-643)"


롤런드가 이렇게 시를 낭송하며 떠난지 구 년이 지났음에도 대프니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할 수 있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 얼뜨기 시절이었음에도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기숙학교에 다녀야만 했던 막막함, 피아노 연주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음에도 미리엄 코넬 선생을 만나 성적 유린을 당하며 조종당하고 육적 쾌락에 탐닉하다 놓쳐버린 공부와 재능, 억압하려던 미리엄에서 벗어났지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인생의 탐침자가 방향을 놓아버린 채 방황했던 시기들, 작가 지망생이던 앨리사 에버하르트를 만나 로런스를 낳아 기르는 행복함에 젖어들 찰나 갑작스레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떠난 아내의 살인자로 의심받았던 순간, 롤런드의 정처없는 방황과 맞물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을 보기 위해 방문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앨리사의 냉담한 태도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한 앨리사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결심,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기억이 쇠퇴하는 가운데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친형의 존재, 친구의 아내로 만났던 대프니와의 길고 긴 인연 끝에 결혼을 약속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맞이한 영원한 이별, 이미 독일의 위대한 소설가가 된 앨리사의 악화된 건강과 그에 대한 방문 요청, 그리고 더 이상 앨리사를 원망하지 않게 된 마지막 만남. 


롤런드는 두 번의 결혼을 하지만 실제로 아내와 같이 지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앨리사는 1년 만에 짧은 편지를 남긴 채 소설을 쓰기 위해 남편과 아내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대프니는 결혼을 약속하자마자 암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롤런드의 말년은 대프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슬픔에 젖어들지만 그에게는 앨리사가 남기고 간 아들 로런스와 대프니와 피터 사이게 낳은 자녀들의 손주까지 꽤나 많은 가족들이 그를 돌보며 애정어린 관심을 갖는다. 반면에 앨리사는 독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과도한 흡연과 고립된 생활로 이미 폐는 망가졌고 다리까지 절단하게 된다. 그리고 앨리사의 저명함과는 반대로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롤런드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지켜보면 저자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윤리적인 판단을 배제한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후대에 이름을 남길 일이 만무한 지극히 평범한 생의 지속과 자녀 양육을 위해서 이런 저런 노동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던 롤런드와 같은 소시민의 삶과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될 유명한 저자로서의 명성과 그 명성에 걸맞는 부와 지위를 얻는 특별한 존재의 삶 중에서 말이다. 무명의 롤런드에게는 의붓손주까지 북적이는 저녁 식탁이 있다면, 유명하고 존귀한 이름으로 알려진 앨리사에는 지독한 담배 냄새에 쩔은 거대한 집에 식사 도우미밖에 없다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은 돈보다 더한 것으로 빚을 갚게 하시지.(433)"


#이언매큐언 #레슨 #문학동네 #IanMcEwan #Les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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