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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여름철 대삼각형
  • 이주혜
  • 13,500원 (10%750)
  • 2025-08-22
  • : 2,480

이주혜 작가의 [여름철 대삼각형]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51번째 작품이다. 별자리에 별 관심이 없던터라 제목을 보고 내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표지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밤하늘을 수놓은 밝기가 조금씩 다른 별이 점처럼 찍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소설의 첫머리에 오리온 자리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해석이 길잡이처럼 나왔음에도 '여름철 대삼각형'이 세 개의 빛나는 별에 대한 독특한 명칭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갑자기 '우주소년단'에 들어갔다. 그동안 별과 별의 마당인 우주에 관심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더 늦기 전에 뭔가 단복을 갖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표면적 이유였을테고, 초등학생 때 보이스카웃 활동에 돈이 많이 들어가 애초에 가입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뒤늦은 보상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주소년단의 단복은 스카웃 단복처럼 그럴싸한 스카프와 베레모은 커녕 어디서 물을 들인건지 모를 시퍼러둥둥하니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미 회비를 지불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단복을 입고 남쪽의 먼 지역까지 캠프에 참가하여 처음보는 아이들과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했던 기억이 남았다. 지금도 앨범 어딘가에 우주 공간에서 조이스틱을 움직여 이동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빌을 타고 몹시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찍은 사진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처음보는 이들과 순식간에 친해지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성정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전국에서 지극히 촌스러운 단복을 입고 모인 이들과 친분을 쌓고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바라본 별자리를 재미있게 논할 줄 알았다. 우주소년단 모임 때문에 별자리에 더 관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성인이 될때까지 반딧불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남쪽 나라의 휴양지에서 반딧불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고, 야트막한 배를 타고 현지 가이드의 후레쉬 불빛에 반응하는 엄청난 무리의 반딧불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때 가이드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반딧불에게 후레쉬 불빛을 비추는 것이 그들의 개체수를 줄이기 때문에 얼마 안가 반딧불 투어를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어떨까? 그런데 최근에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반딧불 투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한 해의 어느 짧은 계절에만 볼 수 있는 반딧불을 구경하기 위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스마트폰 불빛과 어린 아이들의 반짝이는 신발 불빛까지 차단한 채 앞사람과 여러번 박치기할 뻔 하며 1시간 넘게 어둠의 곶자왈을 걸었다. 띄엄띄엄 눈 앞을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아니 그 옛날 선비들은 반딧불로 글공부를 했다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반딧부를 잡은 것인가, 그때 반딧불은 지금보다 더 크고 밝았던 것인가 엉뚱한 상념에 사로잡히며 어서 이 코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꽤나 많이 걸어서인지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가 대절되어 있었는데, 차에 오르니 근래에 빅히트를 친 '나는 반딧불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이란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짧은 생을 살다가는 자연의 반딧불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돈벌이가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반딧불 투어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많았기에 요즘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 조부모의 손을 잡고 아마도 처음 마주할 반딧불을 볼 생각에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소설 속 중년의 세 여성과 우주와 시오가 무주의 반디별 소풍 프로그램에 참석해 다른 이들이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참석했다는 것을 의식했던 것처럼, 제주의 반딧불 투어 또한 유사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태지혜, 송기주, 반지영은 비슷한 또래의 중년 여성이다. 태지혜가 두 번의 유산을 겪고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손을 털듯 쉽게 이혼했다면, 송기주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의 손에 자라 사랑인지도 모른 채 남편의 고백과 직진에 결혼하여 태어난 딸 시오에게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점점 손에서 멀어지는 관계를 무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상태라면, 반지영은 오십대의 엄마를 지난한 암투병으로 떠나보내고 재벌집 사모의 운전기사로 살며 친자식보다 사모 딸의 시중을 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그려진다. 


그리고 태지혜에게는 이혼하고 7년이 지난 후 시누이의 딸 우주가 고등학생의 몸으로 갑작스럽게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아이를 지우고 검정고시를 봐 대학에 갈때까지 함께 살게 해달라는 어이없는 부탁을 받게 된다. 송기주는 딸바보인 남편 지철과 다르게 시오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시오는 점점 더 멀어지며 급기야 독립을 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들어간다. 시오의 서운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만 당장이라도 시오의 원룸에 가서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반찬을 한가득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며 '너 노예냐'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던진다. 반지영은 엄마의 바람대로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지만 영어 수행능력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수호의 엄마가 학교에 이의제기를 하며 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지영이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수호 엄마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인해 느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수호의 성정체성을 드러나게 만든 자신의 무심경함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세 명이 중년 여성에게는 공통된 삶의 장애물이 있었는데, 바로 반복되는 악몽을 꾼다는 것이다. 


태지혜와 우주, 송기주와 시오, 반지영과 수호가 가족과 직장이라는 사회적 구조 안에서 나이와 무관한 깊은 연관을 맺게 되면서 세 명의 여성이 밤마다 시달리는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미 어그러져 버린 다음 세대와의 연결을 회복하는 길 뿐임을 무주 여행을 통해서 드러난다. 여름철 대삼각형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는 여정을 통해 나이를 잊고 철부지 아이들처럼 시시덕대는 엄마 세대의 모습을 보고 서운한 마음을 소거하는 시오의 모노레일을 탄 산 중턱의 산행과 기꺼이 용기를 내어 그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게를 넘는 동굴을 통과하는 우주의 새벽 산책은 누구나 반짝이는 별처럼 빛을 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요히 인정하게 만든다. 당신이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 사람이 가만히 희붐한 빛을 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기를...


"잠은 잠깐의 죽음과 다름없는데 꿈이 있어 우리가 그 죽음의 허방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삶 쪽으로 건너오는 거라고. 

악몽이라도? 

악몽이라도.

그럼 악몽은 조약돌이면서 닻이기도 하네?

고통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조약돌. 삶에 드리운 닻.(120-121)"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삶이란 이토록 예측 불가능하면서 동시에 유한하다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201)"


#이주혜 #여름철대삼각형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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