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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말뚝들
  • 김홍
  • 15,120원 (10%840)
  • 2025-08-30
  • : 31,940

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읽었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제목도 특이하거니와 표지마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얼굴에는 파란 얼굴의 눈에서 사람모양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에 담긴 그림의 의미가 눈에 더 들어온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주인공의 이름이 딱 한 번 언급되는데, 처음부터 줄기차게 '장'이라는 성으로 불리고 중간에 태이를 통해서 만나게 된 데보라가 프랑스어 발음처럼 '쟝'이라고 불린 것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줄 알았다. 아마도 그렇게 마지막에 이름 석자를 밝힌 저자의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장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다가 3번 낙방한 후에 천재의 무리에 들지 않는다는 성급한 판단으로 은행권에 입사한다. 장이 은행의 선후배들과 겪는 인간 관계의 어려움이나 대출 승인을 위해 미비한 서류 확인을 하는 모습은 현실적인 세계를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장은 납치를 당한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개연성이 없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장의 납치로 인해 소설의 속도감은 배가되고 도대체 누가 아니 왜 무엇 때문에 장을 납치한 것일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더군다나 '트렁크에 넣어두었습니다'라는 차창에 꽂힌 종이를 봤을 때 누구나 다 트렁크를 열어보지 않을까? 그럴 찰나에 얼굴에 복면이 씌어지고 손발이 케이블타이로 묶여 장시간 옴싹달싹 못하게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 트렁크에 갇히 장이 묘사하는 고통의 순간은 마치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결국 방광의 압박을 참지 못하고 누운 채 소변을 지리는 모습과 납치에 풀려난 후 운전석에 앉을 때 욕지기가 밀려올 만큼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똥까지 싼 모습에 대한 비참함의 표현은 너무나도 리얼해서 '아 누구라도 그렇게 장시간 갑자기 납치되어서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파괴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납치에서 불현듯 풀려난 장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범인들은 단서를 남기지 않고 별다른 금전적 신체적 피해를 입지 않은 장은 경찰에게 응근히 조롱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보통 사람이 그런 갑작스러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겪게 된다면 누구나 한동안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장은 납치에서 풀려난 이후 헬맷을 쓴 배달원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 사실 장의 납치 사건을 읽을 때만 해도 저자가 의도하는 바와 [말뚝들]이라는 제목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갑자기 또 뜬끔없는 것처럼 말뚝들이 여기 저기에서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엥 여기서 또 말뚝은 뭐지'라는 생각에 소설의 장르가 갑자기 판타지로 바뀌는 것인가란 의문이 드는데, 장의 납치사건과 말뚝들의 등장은 반드시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향방이 말뚝을 마주한 이들이 이유없이 흘리는 눈물을 흘리는 군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말뚝을 없애버리려는 이들과 말뚝을 감추고 지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 장의 모습과 대비되며 장이 납치된 이유를 어렴풋이 나마 헤아리게 된다. 


말뚝들이 곳곳에서 나타나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한 정부 요원이 첫 번째 말뚝을 조사하다가 말뚝의 입 안에서 장의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명함을 갖고 있던 말뚝은 어느 제련소에서 일하던 동료 노동자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대출을 받으러 갔던 외국인이었다. 장은 그 말뚝의 원래 주인이었던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모험을 단행한다. 장은 어찌보면 그 첫 번째 말뚝인 노동자와 정반대에 위치한 대민그룹의 차남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제련소에서 사고당해 다치고 죽은 이들의 보고서가 담긴 파일을 낚아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반전이고 복수인가? 말뚝을 지키고 보호하려 달리는 장의 모습에서 납치한 이들이 누구인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장이 트렁크에 갇혀 나온 후 PTSD를 겪음으로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재난으로 상해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어떻게 마주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을 재단하고 멈추라고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슬픔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애도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곳에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소설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말뚝을 보고 사람들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자가 바라는 우리 사회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갔을 때 전국민이 그들을 향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기다려줬다면 유가족들에게 백만분의 일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말뚝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외면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모른척 외면한다고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재난에 완전한 대비와 준비를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참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사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쟝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184)"


"제련소에서 유독 물질에 중독되어 죽은 외국인 노동자, 나흘째 잠을 못 잔 상태로 인도를 덮친 택배 노동자, 그 택배차에 받혀 숨진 아이, 그들이 모두 말뚝들이 되어 나타난 순간 이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그리고 말뚝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는 사람들의 눈물 역시 아마도 사회적 슬픔일 것이다. [말뚝들]은 아 사회적 죽음과 사회적 슬픔을 추적하고 반추하며 기록한다. 사회적 죽음을 은폐하고 그 파급을 차단하려는 시스템에 대한 풍자는 주저 없이 단호하고, 자신의눈물이 사회적 슬픔임을 인지하고 그거승ㄹ 감당하려는 장의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서영인 추천의 말 중에서(307)"


"제대로 겪지 못한 슬픔은 모두 어디로 가나. [말뚝들]은 우리 사회가 그간의 무수한 사회적 재난을 충분히 애도하고 통찰하는 대신 은폐하고 소거하기에 급급해왔음을 겨냥한다. 겪어야 할 슬픔은 억누르거나 외면하지 말고 진심으로 애도함으로써 통과해야만 한다. 슬픔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웅크렸다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니까. 어느 날 느닷없이 말뚝으로 시립화된 슬픔이 우리 집 거실로 진군해 들어오거나 광화문 광장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가없는 슬픔에 빠져들게 하는 '말뚝'은 슬픔은 슬픔의 방식으로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가닿은 애도와 연대의 윤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서사적 활력과 함께 찾아와 굳건한 말뚝처럼 독자에게 내리꽂힐 것이다. -편혜영 추천의 말 중에서(310-311)"


#김홍 #말뚝들 #한겨레출판사 #제30회한겨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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