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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하현
  • 16,020원 (10%890)
  • 2025-07-09
  • : 965

하현 작가의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를 읽었다. 부제는 "일하는 나와 글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이다. 몇년 전 띵 시리즈 중에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를 읽고 나서 당시 레어템이었던 아이스팜 자두바를 찾아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저자가 어떻게 이렇게 아이스크림에 대해 잘 아는 것일까 신기했었는데, 당시에는 몰랐던 오랜 시간 일해온 마트에서의 경력이 아마도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된 배경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무려 14년 동안 마트에서 일하며 7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개인적 역사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노동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솔직담백하게 전하며, 저자가 함께 일했던 언니의 말처럼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전통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대부분 지역은 현대화된 대형마트에 점점 잠식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형마트에 주차를 하고 카트를 끌고 거대한 책장같은 진열대에서 하나씩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마쳐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와 수납함에 생필품을 정리하는 것이 어느덧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거의 모든 식료품의 당일배송이 가능해져서 장을 보러 갈 시간조차 없는 이들은 마트에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의 캐셔분들은 워낙에 손이 빨라 긴 결제대기줄이 생겨도 금방금방 일을 마무리 하지만(아마도 이건 본성이라기 보다는 빨리빨리 문화와 컴플레인으로 인해 지적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 않을까 싶지만), 유럽에서 지낼 때 마트를 가면 참을 인자를 이마에 새기며 심호흡을 해야만 할 때가 비일비재였다. 개네들은 대체 왜 그렇게 여유롭고 설렁설렁 일을 하는 것일까? 내돈내산인데도 행여나 캐셔가 갑자기 결제창구를 닫고 길게 늘어선 옆 줄로 가라고 할까봐 노심초사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루는 20유로도 안되는 양의 장을 보고 나서 잔돈이 없어서 아무 생각없이 500유로 짜리 지폐를 낸 적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 작은 단위로 바꾸기가 용이하지 않아 마트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이한 생각이 불러온 파장은 결제를 위해 길게 늘어선 현지 주민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캐셔는 무려 480유로의 거스름돈을 한 장 한 장 보란듯이 소리를 내며 계산대 위에서 세며 '숫자가 맞는지 잘 보라고' 라는 뜻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진 나는 불현듯 내 뒤에 서 있는 현지인들의 신기한 눈빛의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며 후다닥 봉지를 들고 숙소로 내달렸었다. 지금이야 그런 어리버리한 시절을 그리워하며 우스개소리의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마트에서 장을 볼때마져 긴장했었던 때가 아련하게 떠오르며 우리나라 마트의 친절과 편리함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예전에 염정아 배우가 주연한 영화 '카트'에서 마트 직원들이 처한 부당한 대우를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분들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다. 판촉을 위한 행사 인력으로 나온 경우는 제외하고는 젊은 여성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이 망하면 남자는 공사장, 여자는 마트라는 공식이 생겨난 이유는 노동 시장에서 공사장과 마트는 별다른 자격 없이도 생계를 위해 뛰어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일자리라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세상 어떤 일도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어서 나름의 노하우를 체득하기까지 몸과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경험해봐야 아는 것일까? 


어쩌면 저자와 엄마가 공통적으로 마트에서 일하며 삼게 된 가장 큰 화두인 드라마의 단골 대사 중의 하나인 "당신이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해?" 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마트 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근무한 중년 여성보다 신입에 불과한 저자의 수당이 더 높다는 것 또한 마트에서 노동력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기이한 구조로 편성되었는지 또한 단편적으로 엿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부당함이나 미래에 대한 특별한 비전이 없음에도 저자가 오랜 시간 마트에서의 일을 놓치 못한 것은 오로지 글을 쓸 수 있는 생활 반경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직장을 구해 영혼을 갈아넣을 정도로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하다 보면 어느샌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여력이 1도 남아 있지 않는 일상이 반복된다. 저자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바람과 현실에 안주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 대부분은 그나마 안정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면 지금 안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길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헛물켜지 말고 어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성화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은 하고 싶은 일을 놔버리게 된다. 저자 또한 마트에서 일하는 동료 언니들이 여기 있지 말고 나가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으라는 조언과 엄마 또한 언제까지 마트에서 일 할 것이냐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기 위한 용감한 결단은 지속되고 이렇게 마트에서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들 수 있는 에세이가 완성되었음에 박수를 보내며, 마트를 그만 두 저자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지 기대가 된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가짜일까. 일하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마트 밖의 내가 진짜라고, 마트에서의 나는 연기를 통해 만들어낸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의 거짓말이 모여 내가 되고 있었다. 그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동시에 아주 빠르기도 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182)"


"은행과 식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교와 주유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제 그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라고. 은행에도 학교에도 진상은 존재하지만 그곳의 무례함이 이곳의 무례함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마주치는 무례함의 기저에는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이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 감히 네가?' 아무리 꼭꼭 숨겨도 예상치 못한 순간 아주 작은 틈을 통해 툭 삐져나오는 그 마음을 나는 귀신같이 포착하곤 했다.(207)"


#하현 #어쩌다마트일을시작하게됐어요?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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