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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
  • 박대겸
  • 13,500원 (10%750)
  • 2025-05-09
  • : 1,421

박대겸 작가의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대]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48번째 작품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작가와 내용과 상관 없이 무조건 구입하기는 하지만, 처음 제목을 봤을 때에는 완독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전 몇 개의 작품에서도 독서 성향과 맞지 않아서인지 간신히 다 읽은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이번 작품도 그런 류가 아닐까 싶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SF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설마 진짜 외계인이 나오는 얘기일까, 아니겠지, 아니길 바랬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정말로 외계인이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내용이 주된 골자였다. 헐 근데 왜 이렇게 재미있지? 술술 읽히고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그럴듯 한데, 종국에는 진짜로 이런 일이 과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란 상상까지 확대되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명제를 못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막연히 이 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현재의 삶을 게속 살아나가야 한다는 희망적인 말로 해석했었는데, 이번 작품을 다 읽고 나니 다분히 쿨함과 시니컬함을 오가는 방관주의적인 태도가 아닌가라는 해석이 오히려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나 민주화 항쟁을 거친 세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세대보다 부유하게 자란 이들이 마치 자랑하듯 쿨함과 시니컬함을 표방할 때 좀처럼 반기를 들지 못했던 답답함이 소설의 주인공 지민의 불호령 같은 말을 통해서 해소되는 듯 했다. 


"나는 이틀 뒤에 정말로 인류가 절멸하면 어쩌나,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심각하게 고심하고 고민하고 있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래.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내 인생이잖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해야지.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겠지. 행동으로 옮긴다고 한들 바뀐다는 보장도 없고. 바뀌지 않을 확률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아니, 바뀌지 않은 확률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그래도 해 봐야지. 그래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 그래서 어른들이 사는 게 어렵다거나 인생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거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 모든 일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약간은 방관하는 태도로, 자신은 거기에 속한 사람은 아니라는 듯, 그 일이 어떻게 되든 본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쿨하고 시니컬하게 말하고 행동해. ~~ 제발 남아 있는 이틀만이라도 적극적으로 부딪치며 지내 봐.(123-125)"


몇 년 째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그리고 이어진 이란의 핵시설 무력화를 위한 공격 등으로 제3차 대전이 발발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러다 전세계가 전쟁의 망국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란 공포와 두려움이 양상된다. 하지만 인간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른 지향을 두게 된다. 현재의 삶이 지옥처럼 극심한 고통의 연속이라면 차라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엄청난 일이 생겨나 모두가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약한 심보를 품게 된다. 반면에 현재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행여나 이 행복이 갑자기 끝나버릴까 두려워 부디 모든 일이 평화롭게 잘 해결되기를 바라게 된다. 나 또한 뜬금없이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 의지가 아닌 어떤 절대적 힘에 의해 지금의 고통이 단숨에 사라졌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지독하게 이기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내가 하루하루 사는게 별 의미없이 느껴질 때에도 분명 누군가는 매 시간을 충만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지독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행복과 불행의 순간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확대되어 보이거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해석하게 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조금만 돌이켜봐도 한 인간이 보내는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은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한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상의 삶을 살아가며 남기게 될 그 작은 점 하나가 수없이 모여 제대로 된 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내 삶의 점이 곧은 선을 만들어내는 데에 오점이 되지 않도록 항상 의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류가 멸망하게 될지 모른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냥 일상을 살아가다 다 함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죽겠다는 쿨함과 시니커함을 소신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내란 사태 이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밤에 은박 보호 담요를 덮은 이들의 몸에 소복히 쌓인 눈이 마치 초콜렛 모형처럼 보여 키세스 시위대라는 별칭이 붙어졌다. 영하의 날씨에 차디찬 바닥에 앉아 한 목소리를 내던 이들의 사진을 보면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대체 어디서 저런 인내와 저항의 힘이 나오는 것일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지 않는 그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수많은 익명의 동조자들을 만들어내는 용기 있는 선택을 감행한 이들은 바로 소설 속 지민처럼 보인다. 이제 인류의 멸망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평소처럼 하던 알바를 하다가 가까운 이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보는 선택할 수도 있지만, 지민은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선택이 아닌 작은 영웅이 되고자 한다. 어떻게 어디서 미약한 자신이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마냥 손놓고 있지 않기로 결심한다. 


"만약 어제 루리코와의 우연한 만남이 실은 우연이 아니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맥락과 필연으로 인해 만나게 되었다면. 그리하여 오늘 오전에 받은 아빠의 메시지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해석을 내리게 되었다면. 거창하게 인류를 위해서, 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고, 나의 의지라고(102-103)"


물리학과 우주와 관련된 과학적 설명이 많이 나와서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이 되어 그럭저럭 맥락을 따라갈 수 있었다. 소설의 말미에 지민이 갑작스러운 삿포로 행을 받아들여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긴 구형 핸드폰이 가득한 배낭을 메고 육체적 죽음을 맞아 소입자로서의 자신을 인지하게 되는 장면은 과연 SF라 할만한 상상력을 가중시켰지만, 언제 어디일지 모를 작은 영웅으로서의 선택의 기로에 초대받게 된다면 지민처럼 미약하나마 기적을 위해 나의 의지를 불태우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어쩌면 소설의 말처럼 "아마 인류는 한때 인간이었던 존재들이 파동-입자가 되어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외계 생명체 소동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이겠지. 상관없다. 우리가 훨씬 더 넓은 곳에서 훨씬 더 오래도록 살 테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전부 기억할 테니까.(227)"


#박대겸 #외계인이인류를멸망시킨대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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