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제코루님의 서재
  • 치유의 빛
  • 강화길
  • 16,200원 (10%900)
  • 2025-06-05
  • : 13,883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을 읽었다.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리앱을 열면 무심코 작년, 제작년 그리고 그 이전의 같은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런 일정이 표시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거나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과 만남의 기록이 단출하게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그렇지만 어떤 특정한 날은 다이어리를 살펴보지 않아도, 아니 그 부근의 날력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아직은 언제가는 좀 더 여유롭게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을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도 있다. 어쩌면 내가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각자의 직면하기 두려운 과거의 기억을 감춘 채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나와 이야기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그동안 억세게 운이 좋았거나 아님 무지하게 나 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왔거나 둘 중의 하나였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보며 그때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란 부질없는 복기를 반복하게 된다. 어떤 판타지 같은 영화가 아니고서야 과거의 시간을 바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일텐데 왜 자꾸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반복하는 것일까?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후회인가, 아님 안심인가. 나이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게 된다. 한 눈에 봐도 부럽고 멋지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가 있는 반면에, 참 힘들거 같아 보여 상대적인 위안을 주는 이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나의 생각이나 예견과는 무관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의 추측은 사실 그들 각자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어떤 기준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삶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아등바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로 쉽게 삶을 단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수치와 번지르르한 겉치장에 중독된 시대에 살면서도 어떻게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죽는 그 순간까지 추구하는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 박지수와 그녀의 학창시절 친구인 해리아, 신아, 지연과의 최초의 기억에 대한 초대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통증의 순간들을 치유하기 위한 빛을 찾아나서는 길을 안내한다. 중3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몸이 커진 지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오래된 역사인 것 같다.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면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에 지수는 엄청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변해버린 몸을 마냥 탓을 수 많은 없다. 이제는 커진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수가 성인이 되어 태인과 연애를 하면서도 폭식과 단식을 오가는 극도의 다이어트를 지속해왔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의 서막은 비단 지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외모지상주의와 SNS를 통한 자기PR의 시대에 살면서 몸을 가꾸지 않는 것은 인생을 포기한 것과 동일시되어가고 있기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살과의 전쟁을 치루던 지수는 어느 순간부터 날개뼈 아래 부근에서 밀려오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통증의 이유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된다. 이것 또한 지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내 몸을 내 마음으로 하고 싶다는 데 남이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주장은 어이없지만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세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아주 간단한 감기 몸살이 아니라면 좀 더 복잡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몸의 이상을 느낄 때 아픈 것 이상으로 마음이 답답해진다. 병원에 가더라도 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기 힘들 때에는 아니 지금껏 수십년간 갈고 닦은 나의 몸의 이상을 이렇게 알아채기 힘들다는 사실에 무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수는 우연히 엄마를 통해 잊고 살아왔던 중학교 동창생들의 근황을 전해듣게 된다. 지수의 몸이 커졌을 때 지수를 알아본 전교생의 우상이었던 해리아와 지수처럼 해리아를 동경했던 신아가 채수회관이라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지수는 해리아를 만나기 위해서인지, 극심한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채수회관에 입소하게 되고 그곳에서 과거의 수영장 사건을 다시금 조우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해리아가 지수에게 수영을 배우고 해리아를 질투하던 안지연과의 수영 대결에서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치는 사건을 계기로 지수는 다시는 해리아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지수가 회상하는 수영장 사고는 마치 자신이 동경해왔던 해리아가 수영을 배운 이후 자신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분노로 사고를 당한 해리아에게 왜 죽지 않았냐는 섬뜩한 말을 건네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드높인다. 


마치 해리아의 시녀처럼 다른 누구의 관심과 사랑도 허락하지 않으려 했던 신아 또한 지수를 매몰차게 내치며 해리아와 신아의 가족이 소속되었던 사이비 종교 집단에 대한 접근도 거부한다. 해리아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영원히 지속되는 통증을 갖게 된 것이 사이비 종교 집단에 매몰된 무지한 이들과 결속된 이상한 병원 의사와의 의심스러운 잇속 관계 때문인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것에서 뛰어나 보였던 해리아 마저도 사실은 지수처럼 그곳을 벗어나 진짜 자유로운 몸을 갖고 싶었다는 것은 소설의 말미에 드러나게 된다. 


지수가 채수회관에서 머물며 지우의 케어를 받는 도중에 환시를 보는 듯한 장면들은 마치 지수가 영원히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은 몰래 준비해 온 약에 의지하며 무력하게 무너지는 듯한 결말을 가져오는 듯 했으나,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벗과 심우의 베일에 싸인 비밀이 지수가 수영장에서 보았던 빛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지수가 지우의 마음을 돌리고 심우인 신아와의 대화에 이어 해리아를 마주하는 장면들은 마치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으스한 느낌을 넘어 결국은 비극으로 치닫는 것이 아닐까란 섣부른 결론에 다다르게 만든다. 하지만 지수가 해리아를 만나고 치유의 빛에 해당되는 처음의 기억은 다름 아닌 지수와 해리아와 신아가 사이좋게 수영을 배우고 대결을 치루다 외톨이였던 지연을 불러내며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지수가 보았던 치유의 빛은 무엇이었을까?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다 과거를 비틀어버리는 것일까? 아님 후회와 아쉬움을 곱씹으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을 마음대로 재해석해버리는 것일까? 어느쪽이든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과거에 하지 못했던 용기 있는 결단을 이제는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삶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될 수 있기 때문에....


#강화길 #치유의빛 #은행나무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