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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15,120원 (10%840)
  • 2025-04-06
  • : 135,705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글쎄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불행이 생겨난 원인을 공유하다보면 겉으로는 참담한 척 애써 연민의 눈빛을 드러내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안도하게 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불행의 이유를 낱낱이 기억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조금은 삐딱한 시선이고 타인을 경계하는 태도를 자아낼 수 있겠으나, 불행의 이유를 곱씹게 되는 시간을 통해서 불행이 남겨둔 숙제인 고통이 제시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인 고등학생 때에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이들 앞에서 진지한 주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늘어놓기를 서슴치 않았던 것 같다. 특히나 성당 주일학교 교리 시간에 그런 일이 잦았는데, 교리 선생님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아마도 다른 친구들은 상당히 재수없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는 애써 참석한 교리시간을 허투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아님 옮긴 성당에서 아직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어떤 주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 오면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나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내뱉은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 유행했던 문집을 만들 때 너무나도 거창하게 제목을 '삶의 의미'라고 붙이고 나만의 철학을 써내려갔다. 원본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목만큼은 확실히 생각난다. 세상에 스무살도 안된 나이에 '삶의 의미'라니, 대체 뭘 알고 그런 제목을 붙인걸까?


이번 책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조금 놀랄만큼 상세하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어쩌면 치부가 될 수도 있는 일을 가감없이 서술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과의 일화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했던 이들에게 남다른 위로를 전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나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나았거나 나빴거나 하는 우위를 가늠할 수 있다 해도 세상을 떠난 두 분을 기리며 전하는 진심은 우리가 겪는 고통의 순간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31)"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내용은 그동안 고정관념처럼 박혀 있던 생각에 유연함을 가져왔다. 내가 알던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한 번 뇌리에 박힌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지속적으로 적용해 왔던 삶의 습관이 때로는 얼마나 옹졸해 질 수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흔히들 하지만 사람은 평생 많이 변한다. 노력으로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에 적응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수준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테세우스의 배와 마찬가지다.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고 다시 생성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세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행동도, 마음도, 습관도, 조금씩 달라지다가 그 변화가 누적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린다.(76)" 


<왕좌의 게임> 미드로 더욱 유명해진 조지 R. R. 마틴 작가에 대한 내용에서는 전업 독자라는 생경한 직업의 탄생을 알게 되었고,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다음 권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애타는 비난은 실로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놀람을 금치 못할 뿐이다. 나도 한 때 '얼음과 불의 노래' 독자 정도는 아니었지만,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에 출현하느라 바빠서 새로운 작품을 못 쓰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치 어떤 작가의 애독자라면 작가를 향한 채찍질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위안'에 나온 내용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진 삶의 양태를 스스로 선택하고 완성해 나가는 것에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저자가 말하듯이 어쩌면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단 한 번만 허용된 솔직 담백한 인생 사용법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기에, 기다림은 우리 삶에서 뜻밖의 기쁨과 행복을 전해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하는 상상력 덕분에, 삼십대에 영화계로 넘어갔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대학에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뉴욕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방송인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아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상상 끝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럴 때, 내 눈앞의 세계는 단순한 현실이 아니라 내가 하마터면 살 수 있었을 n개의 인생 중 하나로 보인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 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이 방법이다.<우연한 생>- (187-188)"


나이가 들수록 그때 그 선택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자주 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간 것을 상상하며 그 이후의 삶을 그려보다보면 아쉬움과 더불어 안도감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지금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비슷한 형태의 잘못을 했을 것이고, 엇비슷한 실수와 상처를 주고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삶을 잘 완성해가며 오래전 사춘기 시절에 끄적거린 '삶의 의미'를 재현해 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김영하 #단한번의삶 #복복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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