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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코루님의 서재
  •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 30,600원 (10%1,700)
  • 2025-03-19
  • : 11,919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서전 [희망]을 읽었다. 최근 포탈 기사에 연이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병세에 대한 정보가 전해지고 있다. 두 개의 커다란 전쟁에 대한 기사도 자주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지도 모를 종교의 수장에 대한 건강보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교황님의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바티칸과 관련된 내용을 평론하는 이들의 기사에 의하면 냉전시대에 비해 교황님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작아졌음을 지적하며, 교황님의 직접적인 중재에도 분쟁을 일으킨 각국의 지도자들은 예전만큼 그분의 비판과 지적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교황님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과 기대는 여전한 것은 아마도 불가지론자든 다른 종교인이든 점점 망국으로 치닫는 것 같은 불우한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분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황님의 자서전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어떤 특정한 한 개인의 놀랍고 신비로운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 개개인이 불의와 거짓이 주는 이익에 편승하지 않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들이 모여 가능하기에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2013년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스스로 교황좌에서 물러나겠다는 보도로 전세계 사람들이 깜짝 놀랐었다. 그 이전까지 물론 600년 전에도 생전에 같은 일이 있었지만 대체로 종신직에 해당했던 교황좌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아직 외적으로 봐서는 건강에 큰 무리가 없어보였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사임 소식은 가톨릭 교회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적인 서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분의 사임 소식 못지 않게 새로운 교황님의 탄생과 그 이후 이어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소박하지만 혁신적인 행보는 마치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넣은 것과 같은 싱그러움을 안겨주었다. 


최근 전세계의 80세 미만의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모여 새로운 교황님을 선출하는 과정을 그린 <콘클라베>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생애 역작에 해당되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래 100여명의 추기경들이 모여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물을 뽑는 과정이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마치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원래 사제들이 입는 검은 수단(열혈사제에서 김남길 배우가 입고 나오니 더 멋져보였지만) 자체가 허리라인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길게 뻗어 그 자체로 맵시가 나는 옷인데, 주교 이상의 직분을 가진 이들이 영화 속에 등장인물 다수로 나오다보니, 대주교의 자색 수단과 추기경의 홍색 수단 그리고 교황님의 흰색 수단이 시스티나 성당의 빨간색 카펫과 어우려져 그야말로 영원히 힙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을 뽑아냈다. 


아무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렇게 콘클라베를 거쳐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첫 인사를 건네실 때부터 이전의 정형화된 관례를 깨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서전에도 나오듯이 원래 첫 인사는 정해진 라틴말의 축복을 해야 함에도 'Bounasera'라는 이탈리아 인사말을 친근하게 건네시며 자신의 첫 인사를 기다리는 수많은 군중에게 기도를 먼저 부탁하셨다. 이후 교황을 상징하는 의복의 화려함을 거부하고 사도궁전이 아닌 마르타의 집에서 거주와 고급 리무진이 아닌 피앗 같은 소형차를 타는 소박함을 보여주어 많이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이런 교황님의 파격적인 어쩌면 전임자들과 상대적으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선택의 과정들은 단순히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정말로 그분이 불편했기 때문임을 자서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그분이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으신지, 어떻게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었는지, 시원치 않은 무릎을 굽혀 독재자들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라도 그들의 마음이 돌아서 분쟁이 멈추기를 기원했는지, 그분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고백하는 내용을 통해서 놀라운 용기와 결단과 실행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서전에는 조부모님 세대가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자리를 잡아 교황님이 태어나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어릴 때의 철없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서서히 사제 성소를 갖게 된 경험들을 전해준다. 단순히 교황된 한 개인의 개별적인 고백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교황님이 겪었던 실제의 일들과 견주어 교황님의 가르침이 덧붙여져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된 권고와 회칙 그리고 교회의 문헌들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는 종합판을 아우르는 것 같았다. 특히나 교황님의 두 번째 회칙에 해당하는 <찬미받으소서>는 환경오염과 생태보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환경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단지 지구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부각시키기 위함만이 아니라 너무나도 손쉽게 만들어 쓰고 버리는 문화가 비단 물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소비의 행태가 종국에는 가난한 지역의 이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을 경각시키기 위함임을 말한다. 


더불어 제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지금의 상황을 개탄하며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악에 받친 분노와 복수의 비극이 지속될 뿐임을 일깨워준다. 지금도 뉴스를 통해서 끊임없이 보도되는 부모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교황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세상의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공포와 억압, 비참과 타락의 언어, 인간이 빠져드는 가장 어두운 골짜기의 언어는 늘 한결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은 침묵의 언어입니다. 무관심은 말조차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모른 척하면 그만이야...' 이런 속삭임들이 가장 무서운 말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376)"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가 사는 곳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행되는 비극적인 만행들을 손쉽게 눈감아 버리고 모른 척하는 것은 언젠가 부메랑처럼 불행을 가져올 것이기에 교황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봐야 함을 일깨워 주신다. 자서전의 말미에 이어지는 희망에 대한 권고와 용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예화들은 시시 때때로 포기와 좌절을 낳는 일상의 권태로움과 나태의 유혹을 벗어나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요한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에 해당하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가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를 빗대어 독자들에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언제나 간직하기를 바라신다. 


"혹시 언젠가 두려움과 근심이 밀려올 때면, 요한 복음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 잔치를 떠올려 봅시다(요한 2,1-12). 그리고 스스로 말해 보세요. '가장 좋은 포도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입니다. 농민의 후속인 제게는 이 비유가 특별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깊고 기쁘며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비록 통계가 다른 말을 하고, 지친 몸은 힘이 빠져도, 결코 꺽이지 않을 이 희망만은 잃지 마십시오. 이 말을 기도처럼 되뇌어 보세요. 기도가 어렵다면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여도 좋습니다. 믿음이 약하더라도, 진심으로 믿을 때까지 계속해서 속삭여 보세요.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도, 사랑이 메말랐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 주세요. '가장 좋은 포도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입니다.(496)"


#프란치스코교황 #카를로무쏘 #희망 #SPERA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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