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스스로 종결시키려 했을 때 나타난 구원과도 같은 여자.
감정이라는 걸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였을까.
뜻하지 않은 살인과 그것을 덮기 위한 알리바이, 자신을 구원해준 모녀를 범죄의 한복판에서 구원해주는 이시가미. 그의 헌신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한순간 살인범이 된 모녀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모든 것을 그의 계산 아래 놓이게 하는 이시가미. 하지만 그의 동창인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의 등장은 완벽했던 그의 계산에 균열을 일으킨다.
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는, 대단히 이성적인 머리와 치밀한 계산만이 가득할 것 같은 두뇌싸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비밀의 열쇠도, 결말도, 모두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감성이 쥐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시가미가 평생 관심도 없던 용모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발견하고, 질투의 빛을 드러낸 얼굴을 본 순간 유가와는 그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고 이것은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므로.
이성이 아닌 감성의 지배를 받아 한 이시가미의 행동은 한 사람을 살해한 여인을 위해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그 끝은 그의 행동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이시가미의 행동이 진정한 사랑 이상의 어떤 것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그의 삶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그가 유일하게 품었던 한 여인의 대한 순수한 감정, 단 하나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녀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감정 단 하나만을 그가 가진 이성만으로 지키려 했기에 그는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러한 끔찍한 선택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빼앗기거나 감동해 본 적이 없었다. 예술의 의미조차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수학 문제가 풀릴 때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은 쓸쓸하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 그리고 X의 헌신 혹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X의 헌신, 두 가지 모두 의미를 지니고 두 가지 모두가 진실이 된 제목은 이시가미의 감정 표출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소설의 결말, 단 한 곳뿐이었다는 것만큼이나 쓸쓸하다.
헌신과 살인, 구원, 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 살인을 위한 헌신, 헌신의 결과가 된 살인. 비극적이다. 앞서 말했듯, 그의 헌신은 그의 삶 그 자체였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