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온화하기로 소문난'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건의 사항이 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한 부하 직원이 용기를 내어 "일방적이고 모호한 업무 지시 방식을 개선해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사례와 몇 가지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러자 그 상사는 여느 때처럼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자네는 마음속에 늘 불만을 품고 있었던 거로군. 그래서는 상대방의 이야기가 자네 귀에 제대로 들릴 수가 없어.
나처럼 명상을 좀 해보지 않겠나? 자네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자네 머릿 속에 스치는 여러 불만 가득한 생각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을 가져봐.
그러면 어느새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하지 않게 돼. 불만스러운 현재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마침내 어떤 상황에서도 남 탓할 필요 없고 오로지 자네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는 걸 알게 되고 업무 능력도 올라갈 거야."
위 이야기는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을 이 책이 문제 삼는 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나라는 한 개인은 소중한 존재고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편하길 원한다. 또한,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이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게 현명할 때가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이 책의 저자가 문제 삼는 방식의 명상법처럼 머릿속으로 '현재 시점'에 찾아드는 수많은 생각을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관망하기만 함으로써 '내 마음에 어떤 동요 없이 평안을 느끼는' 것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며 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저자가 잘 지적한 대로 우리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 함께 협력하며 대비해야 할 "문제들을 볼 수 있는 눈이 감겨"버릴 수 있다. 심지어 "문제가 보이지 않을 뿐인 현재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런 문제가 보이더라도 공감해야 하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될 수 있다.
오늘날 대유행하고 있는 명상법에 관심이 많거나 그런 명상법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혹시 나도 자본주의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긴 사람에게 추천한다.
또한, 나처럼 기독교인이면서 기도하거나 묵상할 때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불교 승려이기도 한 저자가 "불교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교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어진 오늘날의 명상"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내용은 기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