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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스모커님의 서재
  • 한낮의 어둠
  • 율리아 에브너
  • 15,300원 (10%850)
  • 2021-10-29
  • : 1,643

<만약 우리가 실패한다면>

 

“모든 변화를 나빠지는 것으로 보는 순간 꼰대가 된다.” 말의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씨는 꼰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가 든 사례를 조금 더 옮겨보려고 한다. 지하철 승객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진은 기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소재로 널리 쓰였다. 이를 두고 김봉현은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같지만,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모두가 신문만 봤다.”며 어떤 현상을 볼 때 균형감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화를 나쁜 것으로 섣불리 단정 짓지 않기로 마음을 먹으면 여러 이점이 생긴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으므로 가벼운 입을 단속해서 꼰대질을 피할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이점은 변화의 명암을 고루 살펴야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낮의 어둠》은 현대 과학 기술이 극단주의가 작동하는 매커니즘에 가져온 변화를 차분히 살펴보고 싶은 독자에게 최적의 책이다. 이는 저자의 이력과 집필 형식이 적절히 섞여 만들어진 성과다. 반(反)극단주의 활동을 하는 연구자인 저자 율리아 에브너는 자신의 전문성을 한 손에 쥐고 직접 극단주의의 내부로 뛰어든다. 극단주의 단체의 이념에 맞는 정체성을 꾸미고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로. 연구자 혹은 저자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대상을 연구하는 시도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극단주의 잠입 연구는 난도를 고려했을 때 희소성이 있다. 책 곳곳에서는 저자가 신분이 노출될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나는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이때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쉴 만큼 보복의 두려움과 공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책에는 극단주의 단체의 압력으로 첫 직장에서 쫓겨난 일도 소개되어 있다). 잠입 취재가 아닌 연구서였다면 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이다.


스릴을 좇아 끝까지 읽다 보면 극단주의에 대한 해상도 높은 이미지들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무의식은 관찰 대상을 본질화하고 그룹화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의도적으로 균형 감각을 갖추지 않으면 진실에서 멀어진다. 극단주의도 그렇다. 이슬람국가(IS), 백인우월주의단체, 네오나치 등을 떠올리면 이념과 열정을 구심점으로 삼아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떠올리기가 쉽다. 우선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다. 저자는 2017년 극우 집단이 샬러츠빌에서 모였을 때, 집회 전략을 미숙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그룹들과 사람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특정 이념에 세뇌당한 전사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도 환상이다. 여성 지하디스트들의 모임 ‘테러를 실행하는 자매들’ 채팅방은 테러 모의와 홍보가 이뤄지고 실시간으로 테러가 현실이 되는 곳이다. 이 채팅방에 여성들이 모이는 이유는 오히려 종교적 열정보다 오히려 인간적이다. 책에서는 전사가 아니라 조언을 구하고 위로를 건네며 연대감을 쌓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낮의 어둠》은 극단주의와 현대 기술의 어두움에 초점을 둔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변화를 나쁨으로만 받아들이는 소위 ‘꼰대의 함정’에 걸려든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잠입 취재 끝에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분명히 살피자고 제언한다. 변화를 관찰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대안을 마련하려는 건설적인 저자에 가깝다. 스티븐 핑커나 한스 로울링 등 학자들은 세상이 나빠진다는 맹목적 믿음이 오류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바 있다. 《한낮의 어둠》에서 저자가 보여준 극단주의가 시대의 실수인지 실패인지는 조금 더 장기적 추세에서 관찰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다만 만약 인류가 실패한다면, 율리아 에브너가 가리킨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할 것 같다.


* 한겨레출판 서평단 1기 자격으로 책을 증정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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