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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훈님의 서재
  • 맹세를 깬 자들
  •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 20,700원 (10%1,150)
  • 2026-02-20
  • : 3,670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맹세를 깬 자들 (매슈 게이브리얼, 데이비드 페리, 까치, 2026, 초판 1쇄, 419쪽)

 

-프랑크족 카롤루스 왕조의 연대기-

#프랑크족 #카롤루스 #피피누스 #루도비쿠스 #로타리우스 #베르나르두스 #매력적_역사서

 

프랑크 제국 카롤루스 왕조의 시작(궁재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와 단신왕 피피누스 3세)부터 분열(베르됭 조약)에 이르는 역사를 담았다. 우리가 카롤루스 왕조 역사에 관해 가지고 있는 ‘낭만적’ 편견을 극복하도록 연대기적 역사를 넘어 당시 상황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 매우 매력적인 역사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8~9세기 프랑크 제국의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치 저자가 당대를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대 또는 후대에 기록된 사료들 덕분이다. 저자는 당대 기록자의 상황과 의도를 파악하고 사료를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이 부분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매력을 느끼도록 만든다. 게다가 저자는 사료로 남지 못한 당시 일반인들의 상황까지도 추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실판 왕좌의 게임’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9세기 퐁트누아 들판에 서서 마치 전투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841년 6월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가면서 양측은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을 소집했다. 동트기 직전 그 이슬 젖은 6월 아침에, 그 병사들이 전선에 길게 늘어선 모습이 그려진다. …… 퐁트누아 주변 지형은 대체로 평평하고, 그다지 울창하지 않은 숲과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 5월과 6월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가 들판을 뒤덮으며 새벽빛에 아른거렸다. 꽃들은 곧 짓밟혔다.”(8. 퐁트누아, 266~7쪽)

 

또한, 저자는 프랑크 제국의 역사가 카롤루스 가문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집단과 우연, 상황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복합물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고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 책은 분명 카롤루스 왕조의 이야기이지만, 그들 주변에는 이슬람 세력, 바이킹과 비잔티움 제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카롤루스 내전 동안 이 책의 시야가 프랑스의 한 들판, 라인란트의 어느 도강 지점, 제단, 왕좌, 단 하나의 문서로 좁혀질 때조차도 그것만이 유일한 줄거리는 아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결국에는 다른 왕국들, 즉 프랑크족의 왕국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맹세하는 자들, 338~9쪽)

 

 

-과거에 관한 두 질문-

#과거 #기억 #기념

 

“우리는 과거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기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필로그, 377쪽)

 

퐁트누아 언덕에는 회색 석조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9세기 퐁트누아 전투를 기리는 19세기의 기념물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9세기 퐁트누아 전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핀다. 이 오벨리스크는 19세기 근대인들이 기념물을 통해 과거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대중의 의식에 굳히려는 시도라고 본다.(378쪽)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근대적 시도로 만들어진 역사는 9세기 프랑크 사람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치열하게 내렸던 선택과 합의를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역사를 정해진 결과로 보고 과거 사람들은 그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어떤 행운과 불운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 갈림길들 중에서 어느 하나에서라도 결정이 단 하나만 달랐어도 길은 아주 다른 곳으로 이어졌을지 모른다.”(에필로그, 385쪽)

 

841년 6월 25일, 퐁트누아 전투 이후 프랑크 제국은 다시 통합될 수 없었고, 우리는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9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19세기 나폴레옹조차 프랑크 제국의 통합을 꿈꿨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9세기 프랑크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을 했다. 내전 이후 분열을 해결하고 프랑크 제국의 통일이라는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실패하였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사료를 대하는 자세-261

#중세인 #사료 #전쟁

 

“… 이 책에서 참고해온 모든 사료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당파적이며 사실을 기록하기보다는 우주론적이거나 신학적인 의미의 더 큰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래도 궁정인과 권리 주장자들의 속셈에 휘둘리지 않도록 그 사료들을 서로 대조해가며 읽어보고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보자.”(퐁트누아, 261쪽)

“이는 사료가 무엇인가를 마지못해 드러내는 순간들, 진실이 양피지(문서)에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들의 하나일 수도 있다.”(퐁트누아, 275쪽)

 

저자가 사료를 대하는 자세가 좋다. 아마 나도 저자와 비슷한 사람이라 그런 듯하다. 역사를 좋아하고 공부하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가 책 곳곳에서 사료를 대하는 자세를 표현한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역사를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현대인의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도 잘 보여준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면서 과거인들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거나, 선형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역사가 일직선상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보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인의 주체성과 선택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실상에 가장 가까이갈 수 있는 역사 연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이전의 유럽인들이 오늘날 우리보다 단순히 더 미개하고, 사람을 더 잘 죽였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 중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현대인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대지가 공포에 몸서리치다. 291쪽)

 

“우리는 일반 병사들이 고향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원정 중에, 선술집에서, 혹은 장례식에서 이야기되는 사연들을 들을 수 없다. ……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사료가 없더라도, 우리에게는 적어도 두오다의 편지가 있다.”(비통한 제국과 비통한 어머니들, 360쪽)

 

 

-이 책의 매력-

#보편성 #특수성 #미시사

 

최고 권력의 지위가 불완전할 때, 그들은 ‘측근(側近, 가까운 사람들)’에 의존한다. 이것은 세계 어느 역사에서나 나타나는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다. 카롤루스 마그누스 이래로 프랑크 왕국에서 나타난 영토 분할의 모습도 다른 제국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한국사에서는 이런 측근 정치나 영토 분할이 잘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보편적인 상황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만큼 한반도가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려가 몽골 제국의 일원으로 제국 정치에 깊이 간여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고려에서도 측근 정치가, 영토 분할을 둘러싼 고려왕과 심양왕의 갈등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이런 역사적 보편성이 서양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 낯설었던 부분, 즉 프랑크 제국에서만 나타난 특수성은 종교 부분이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프랑크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이 교회와의 관계 설정을 두고 경쟁한 부분이나, 로마 주교가 라벤나 주교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낯설었다. 또한, 프랑크 제국이 라틴어와 법령, 기독교로 구성된 문화를 바탕으로 유럽 전역에 식자층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아니 내가 몰랐던 부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여성, 일반 백성, 이민족의 시선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프랑크 제국을 움직인 사람들은 물론 거의 카롤루스 왕조의 남자들이다. 하지만 그들과 혼인한 여성들도 궁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카롤루스 남자들처럼 여성들도 그들의 조상 이름을 물려받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카롤루스 왕조의 왕위를 계승하는 남자와 여자들은 조상들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이 덕분에 카롤루스 왕조의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사람들은 어렵지 않았겠지만, 후대 사람들이 볼 때 그 수많은 카롤루스와 피피누스와 루도비쿠스와 로타리우스들을 어떻게 쉽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료가 남아 있지 않은 당시 백성들의 삶을 현대의 상황에 빗대어 추론한 부분도 매력적이다. 저자는 지형과 도로, 계절과 상황을 이용하여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상황을 묘사하거나,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골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등의 방법을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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