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은 작가의 이전 작품과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명랑하고 씩씩하며 천진하고 야무진 아이들의 모습이 판타지였다면 이 작품은 청소년 모험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표지의 네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핸드폰만 보고 있는 5학년이 아니다. 삼해시는 어떤 곳인가. 산도 있고 바다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거사를 위해 큰 도시로 온다. 무슨 일일까.
네 명의 아이들, 이록희 박수찬 조진모 한기주. 책을 읽다 보면 네 아이들이 묘사된 부분에서 표지 속 아이들을 상상하게 된다. 내가 결론 내린 아이들의 이름은, 맨 위는 박수찬, 그리고 조진모,이록희,한기주 순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특징을 읽다 보면 연결이 된다. 다 읽고 나니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색으로 표지의 아이들을 칠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정서적인 교훈을 넘어선 지구의 일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환경동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억지스럽지 않으며 곳곳에 즐거움과 설렘이 숨어있다. 내가 만나는 5학년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강인하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 윗동네 아랫동네로 나뉘는 삼해시의 아이들이라서 일까. 휴대폰은 이록희만 가지고 있다. 놀라운 청정지역이다.
등장하는 아이들 사이에 어른들이 보인다. 우연히 얻은 좋은 이미지를 가벼이 여긴 어른과 변화를 꿈꾸는 작은 행동을 돕는 어른, 격려하는 어른, 터전을 잃어버려 힘이 없는 어른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 아이들이 있다. 어른의 역할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꿈꾸는 내용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격려만 할 수도 없는 어른도 있다. 사회의 구성원은 그들의 상황에 따라 보고 분석하는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좋은 뜻인 것은 알지, 그런데 반대하는 입장도 이유가 있을 거야. 나쁘다는 것도 알지, 그런데 개인이 결정할 수 없는 일도 있어. 여기에 안 되는 것이 다른 동네에서는 환영받을까.’의 무거운 의문들.더 이상 좋은 어른으로 살기 글러먹은 거 같은 마음.
그런데 이 책은 친절하다. 열린 결말. 이 책의 열린 결말은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결론 없는 열림이 아니다. 모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아니면 함께 움직여 볼까요?라고 손을 내민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어른에 대한 재미난 불신의(?) 표현들.
록희 아빠는 어느새 경제박사 이경석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아주 대단한 귀를 갖고 있어서 교실 맨 뒷자리 아이들이 속닥속닥 떠드는 소리까지 다 알아듣고 이래라저래라 참견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말만 하면 뭐든지 다 도와줄 것 같던 선생님은 결정적일 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 선생님은 칭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고 조용히 있기로 했다. 역시나 어른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아서 용감해지기가 어려웠다.
어른들에게는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속한 공동체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 속 입장, 어느 자리에 있는지 물러날 자리 나아갈 자리를 가려야하는 입장. 이 책은 그런 어른의 입장도 무시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아이라서 그들의 천진하고 단순하며 깨끗한 투쟁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도록 한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종이의 양면처럼 상자의 입체면을 보는 것처럼,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힘을 내 보라고 이야기한다. 지당한 원론을 아이들이 이야기 했다. 어른도 모르지 않는 일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어른이 될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한다.
책의 거의 마무리 문단의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인 흙 먼지' 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독자는 생각해야 한다. 환경동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환경동화는 분명한데 종합선물세트같은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읽고 나눌 이야기들은 환경에 관한 주제도 물론 있지만 약속이나 성격, 성품에 관한 이야기도 해 보면 좋겠다. 진모의 배려와 수찬이의 우정과 록희의 용기, 그리고 아빠와의 대화를 어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