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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쏘한 책 이야기
  • 겨울장면
  • 김엄지
  • 10,800원 (10%600)
  • 2021-01-25
  • : 198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44쪽.





나는 《겨울장면》의 표지를 좋아한다. 초현실적인 느낌도 나고 얼음 호수의 빙판 아래에 물에 잠긴 형상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내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찾고 있지만 찾지 않고, 살고 있지만 살아내지 못하는 붕 떠있는 현실이 빙판 아래의 풍경이다. "작가의 품을 떠난 작품은 각 독자 곁에서 새로운 의미를 혹은 삶을 부여받는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나는 그 말에 따라 작품을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읽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겨울장면》은 현대인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분열된 감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여백이 많다. 주인공 R의 관점으로 서술되지만 R과 독자 사이는 소원하다. R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R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중에 떠 있기는커녕 핸드폰, 이어폰, 충전기, 콘센트 구멍, 스위치, 센서, 뭐 그 밖에 더 많은 것들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너무 붙잡혀 있죠. 각자의 현실들이 판이하게 다를 뿐이겠지요. 이제는 개개인이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기에는 서로 너무 멀죠. 그 거리가 발밑에 허공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습니다. 한 공간에 모여 앉아 있다 해도요. 각자 고개 숙이고 집중하고 있는 영상물만 해도, 그 콘텐츠라는 것들이 요즘 얼마나 분야가 무궁무진합니까?

125쪽.







눈에 보이는 지문보다 그 사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 텍스트가 있다. 주인공과 서사가 뚜렷하게 정해진 장르물의 세계에서 살다가 이런 작품을 만났을 때 예전 같으면 길 잃은 아이처럼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길잡이와 이정표는 별로 없고 혼자 소설 안을 표류하는 느낌. 지금의 나는 《겨울 장면》을 읽으며 그 점에 반가워했다.



뒷부분에 실린 작가의 에세이는 마치 겨울 장면의 평행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이다. 에세이 안에서 작가가 완성한 원고를 "이 미친(151쪽)" 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이 책의 원고가 아니었을까. 에세이가 먼저 쓰였는지 아니면 원고가 먼저 쓰였는지 혹은 두 세계가 동시에 서서히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일이다. 창작의 세계란 이렇게나 흥미롭다.



글을 쓸 때 또 다른 창이 필요하다.

글을 쓸 때 또 다른 창을 내다보는 또 다른 내 눈이 필요하고, 물론 또 다른 눈을 달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머리통이 필요하다.

155쪽.





작가정신 작정단 6기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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