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을 사랑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올곧고 강직한 인물을 사랑합니다. 책 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책이 바로 <월든>이지만, 저는 그리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괴짜 자연주의 철학을 담은 책이려니 하는 선입관만 가지고 있었어요.
<월든>을 마음잡고 읽은 것은 작년이에요. 저도 푹 빠져버리고 말았죠. 사실 자연스럽게 끌려 읽은 것은 아니고 소로의 철학을 다룬 외서 검토를 마친 후, 그 책이 너무 맘에 들었고 그 책을 번역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월든>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인물에 관해 공부해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구글에서 영문PDF를 받아놓고 한글 번역본을 읽기 시작했죠. 기본 바탕이 되는 소로의 사상과 '월든'에서의 그의 생활상을 모르고 번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결국 개인적인 사정으로 계약까지 결정된 번역은 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 후로 월든과 소로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죠.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일기를 읽어보았어요.
소박함에 관하여
나는 호화롭게 차린 음식상에서 받침 달린 유리잔으로 물을 마시기보다는 샘에서 맨손으로 뜬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손수 구운 빵, 손수 지은 옷, 손수 지어 올린 오두막, 손수 모은 땔감을 가장 좋아한다. ... 어떤 철학자들은 맨발로 지내 발병에 걸리고 딱딱한 빵밖에 먹지 못했음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달콤함을 잘 알고 있었다.(102쪽)
소로는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손과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일하는 철학자'였어요. 속세와 동떨어진 외딴 호수에서 철학을 논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 월든 호수는 속세(=사람 사는 마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실제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월든 호수로 들어가기 전에 치열한 학자였고, 생계를 위해 측량기사로도 일했으며 학교를 건립하기도 했던 생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월든 호수에서 살며 거의 원시적으로 보이기도 할 만큼 소박하게 자신이 직접 땔감을 줍고 빵을 굽고 심지어 <월든>을 안 읽어본 사람들도 어디선가 사진으로 보았을 그 통나무집도 손수 지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문이과 통합형 인재'로 라틴어 등의 고전부터 시작해서 이과적 지식까지 광활하게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기에서도 동물과 식물의 생태, 기후 등 엄청나게 해박한 지식을 보여줍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무리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르면 그렇게 세세하게 적을 수 없을 텐데 누가 읽을 것을 상정한 것도 아닐 일기에 너무나 세세하게 동물과 식물들의 생태에 관해 적었습니다.
편리함과 소박함은 공존할 수 없는 말 같습니다. 맨손으로 뜬 맑은 물보다 그 물을 담은 상품을, 손수 구운 빵이라는 상품을, 멋지게 만들어진 옷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이 너무나 저의 모습이고 그것이 나쁘다고 부정할 마음은 없지만, 삶이 단순하고 소박하고 무해한 것이어야 한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나 자신이 가장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
잠잠히 자신을 관찰하고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는지 관찰해보고 또 의지적이든 무의지적이든 인생에서 여러 경험을 통해 내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다. 풀밭을 기어가는 딱정벌레의 길처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평범한 길에 불과할지라도 나 자신이 가장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319쪽)
때로는 이름 없는 풀벌레들의 생몰처럼 우리 인간도 한낱 자연의 한 부분임에 불구한데 헛된 것들을 가지고 우열을 가리려고 합니다. 차별은 싫으면서 자신은 차별화하려고 하죠. 건전한 비판적 시각은 갖추지 못한 채 조롱의 문화가 팽배하고요. 깊이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여 자신부터 돌이켜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한적한 곳에서 날마다 비슷한 루틴으로 성실하게 지내고 가족, 몇몇 친구들과 적당히 딱 좋은 거리를 유지하며 책을 읽고 생각하고 옮기고 적는 그런 삶을 살고 싶네요.
인생에 필요한 건 친구와 고독
나는 누군가를 찾아갈 때면 굳이 몸단장을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유행을 좇는 거리를 피하게 된다. 광 낸 구두가 광 낸 구두를 만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곳으로 간다. ... 어느 누구도 응답해주지 않는 그리움에 휩싸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홀로 걷는다.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85쪽)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저에게는 소수지만 진심과 진심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하지만 자주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초연결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홀로 지내다가 가끔 반갑게 만나는 그 묘미가 있거든요. 소로는 월든 숲을 걷고 호숫가를 걸었어요.
거의 기록에 대한 강박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소로는 자신의 일상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것처럼 적었어요. 이렇게 일기가 출판물로 출간되리라는 생각은 못하지 않았을까요? 하루를 복기하며 숲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꼼꼼히 적은 이 기록은 정말 보배롭습니다.
이 '영원한 여름편'은 소로의 글솜씨가 최정점에 달했던 시기의 일기라고 합니다. 건강 악화로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년 전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소로의 일기:영원한 여름편>을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