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최인호 작가님의 자전적 소설 같은 에세이집을 읽었습니다.
살아생전에, 대중문학, 지극히 대중적인 문학이라는 비판도 받으셨다고 하는데
한국 문학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문학의 형식을 빌어 역사 사료로 남겨두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한 획을 그은 작가님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에세이집에는 인간적인 작가님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는데요.
1990년대 중후반, X 세대라 불렸던 저희 세대에 한번 유행했고
최근 묘하게 선풍적인 인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시 유행하는
MBTI 유형을 상상해 보건대, ENFJ나 ENFP 같은 유형이 아니셨을까 싶어요.
어디까지나 "감"에 의한 것이지만,
천성 자체가 밝고 명랑하시고 성격이 살짝 급해보이면서도
사람을 깊이 관찰하고 애정이 넘치는 분 같았어요.
J인가 P인가는 확실히 모르겠는데 내용을 보니 아마 집필 의뢰가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하루에 거의 A4 3장 분량을 쓰셨던 것 같더라고요.
영어 단어 외우는 빽빽이도 아니고 글을 A4 3장을 날마다 채운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걸 J 같은 타입이셔서 하셨는지 P이신데 상황에 떠밀려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렇게 하셨더라고요.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님의 인생 찬가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책을 읽으며 사모님을 너무나 뵙고 싶더라고요.
"누나, 집사람이 아침마다 내가 아파트에서 벌판을 가로지를 때까지 손을 흔들어요."
"경사 났구나."
"그것도 빠이빠이 하는 게 아니라 컴 온 컴 온 하는 식으로 손을 흔들어요."
"열녀 났구나."
...
아들 녀석을 장가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남게 된 요즘 나는 아내에게서 옛날과 같은
애틋한 작별인사를 받고 싶다.
왜냐하면 작별인사를 나눌 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무사히 일을 끝내고 어서 돌아오라고 독특한 손짓을 하던 아내여,
언젠가는 그대가 돌아오라는 작별인사를 한다 하더라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일이 머지 않았으므로
내가 아파트 복도를 지날 때까지만이라도 문밖에서 나를 지켜봐주구려.
(124~126쪽 발췌)
마음이 너무나 따뜻하고 소녀처럼 순수하신 분 같아요.
손을 옆으로 흔들어 빠이빠이 하면 헤어지는 인사 같으니,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빨리 와 하는 식으로 인사하셨다는 일화에
최인호 작가님은 문자로 글을 쓰셨고
사모님은 인생으로 글을 쓰셨구나,
작가님의 영원한 창작과 열정의 원천, 작가님의 뮤즈셨구나 싶더라고요.
요즘에는 60대는 노인 축에도 못 끼는 장년, 아니 청년에 가깝게 인식이 되는데
작가님이 연세가 드시고 자녀들이 장성하여 둥지를 떠나 빈둥지가 된 삶에 대해 많이 쓰셨어요.
인생을 한탄하고 세상을 비판하고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노래하고 인생에 찬사를 보내는 글로 독자의 마음을 환히 밝혀주시네요.
개인적으로 너무 현학적이고 머릿속에서 사고 실험을 하는 것처럼 사변적인 글,
미사여구가 휘황찬란하여 자신의 어휘력을 자랑하는 듯한 글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그 본능을 발휘하여 막 웃어줘야 하는 마음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글도 좋아하지 않는데
작가님 자신의 천성이 밝고 재미있으시다 보니 큭큭 웃고 있다가 또 찡해서 울다가 그랬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옛날의 선비들은 꽃이 피면 꽃잎에 사연을 적고
가을이 오면 편지 속에 낙엽을 동봉해서 화신을 보내곤 하였다.
편지야말로 워싱턴우체국에 새겨진 명문처럼
지친 우리들을 달래주는 위로자이자 감미로운 사탕이며 칭찬이 아닐 것인가.
한 잔의 커피보다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격무에 지친 내 아들의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영양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5쪽)
지속적이고 연속적으로 오고가지 않는 마음,
내 쪽에서 애써 노력해야 유지되는 관계에 지쳐
어느 순간 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차가운, 어찌 보며 쿨한 사람이 되었어요.
내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마음,
다가오는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나누고
그러다 멀어지면 그런가 보다, 사는 게 원래 그런가 보다 싶더라고요.
최인호 작가님이 문자메시지라는 신문물을 접하시고
지인분들께 문자 편지를 많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올 가을, 최인호 작가님이 시원시원, 서글서글한 문장,
따뜻하고 환희에 넘치는 인생 찬가 속에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