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키야 미우 작가님은 여성 및 노년의 문제를 리얼하면서도 경쾌한 문체의 문학으로 접근하는 작품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격적인 제목이 시선을 끌었던 《70세 사망법안, 가결》이 일본과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이름을 각인시켰죠.
이 작품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여자들의 피난소》입니다. 이 책은 읽다 보면 정말 분노가 부글부글 끓고 복장이 뒤집혀요.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회의를 품게 되기도 하고요. 대재난 상황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간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고 더 소름끼치는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조사해서 픽션으로 구성한 것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런 시궁창이기에 여성들의 연대가 더욱 한 송이 연꽃처럼 느껴졌죠.
오랜만에 읽은 가키야 미우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유품 정리를 통해 고인을 재발견하고 각자의 인생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는 훈훈한 이야기예요.
50대 중년 여성 모토코는 70대 후반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직장일로 바쁜 남편을 대신하여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시어머니의 집에 가서 유품을 정리합니다. 크지도 않은 아파트에 얼마나 많은 짐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는지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지만 빨리 정리를 하고 집을 빼지 않으면 월세가 무의미하게 나가니 마음이 급합니다. 깔끔한 친정어머니와 달리, 시어머니는 가치도 없어 보이는 저렴하고 별로 고상하지 않은 취향의 물건들을 쟁여두고 있습니다. 옆집 여자가 어머니에게 맡았다는 비만 토끼까지 찾아가라고 하니 사면초가입니다. 그녀 역시 파트타임으로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시간적 여유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시어머니의 이웃 주민들의 후한 호의와 도움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 했다.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새빨간 남이다. 옛날사람인 나도 어느새 타산적인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남들끼리 서로 돕거나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는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의뢰한다.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머릿속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모토코는 일본인답게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고 그만큼 남도 나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꺼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토코의 친정어머니가 그런 성향이었기에 친정어머니 사후, 거의 손댈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시어머니를 얕잡아 보았던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량하고 광채를 발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아파트의 주민들은 모두 시어머니에게 큰 신세를 졌다며 며느리인 모토코에게 어리둥절할 정도로 호의적이고 바라는 것 없이 도움을 베풉니다.
이제까지 남에게 부탁한 적은 거의 없다.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도시 생활이 성격에 맞다고 생각했다. ...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대상은 가족뿐, 설령 가족이라도 상대의 상황과 기분을 헤아리고, 친한 사이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단노의 친절함은 어떠한가.
그러면서 시어머니를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삶을 긍정하게 됩니다. 또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던 친정어머니의 방식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토코의 올케이자 친정어머니의 며느리는 모토코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친정어머니는 타인에게도 엄격했던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모토코의 삶도 조금 변하게 됩니다. 예의와 안전이라는 허울 아래 남에게 일절 관여하려 하지 않았던 마음문이 열립니다. 맞벌이 부모를 늘 복도에서 기다리는 이웃집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 같이 밥도 먹고 아이의 어머니와도 말문을 트게 됩니다.
늘 느끼는 바지만, 살아가는 모습대로 죽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토코의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양쪽의 삶 모두가 자기의 모습대로 살았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느 쪽이 좋아 보여도 자기가 아닌 모습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친정어머니는 그 나름대로, 시어머니 역시 그 나름대로 자기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거겠죠.
다시금 다짐하는 바지만,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소중하고 의미있고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되 많은 것을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방바닥에 몇 기둥으로 쌓여있는 책들을 보니 한숨이 나옵니다. 도서관을 최대한 이용하고 많이 팔고 나눠줘야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