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배곳의 『퓨어』가 출간됐다. 미국 내에서 소설, 아동문학, 에세이, 시 문학의 전방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퓨어』는 출판 이전에 시놉시스만으로 ‘트와일라잇’의 책임프로듀서에 의해 폭스사와 영화화 판권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줄리아나 배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퓨어』를 호기심에 집어 들게 된 것은 책 앞날개에 적힌 추천사 때문이었다. “코맥 매카시에게 비견될만한 작가” 대체 어떤 작가이기에, 매카시와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문장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었고, 결국 퓨어를 읽어내려갔다.
『퓨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폭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설정이다. 아주 가깝고 아름다운 예로 매카시의 『더로드』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퓨어』는 『더로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폭발 이후 폐허가 된 곳에서 대폭발의 열기로 인해 신체가 변형된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바깥’과 대폭발 이전 선택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돔’에서 폭발의 피해에서 벗어난 채 살아남은 ‘퓨어’들이 분리된 채 살아간다. ‘바깥’의 생존자들은 돔 안의 있는 사람들에게 질투와 분노를 보낸다. ‘돔’안의 퓨어들 또한 ‘바깥’의 사람들을 ‘천민’이라고 부르며 마치 자신들과 다른 생명체를 대하듯 시선을 보낸다.
이 소설의 주된 서술은 ‘바깥’에서 살아가는 17살이 된 프레시아와 ‘돔’안의 위대한 가문의 아들인 패트리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진행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줄리아나 배곳이 구축한 ‘바깥’과 ‘돔’의 세계 때문이다. ‘바깥’의 세계는 대폭발 이후의 흙먼지와 재만이 가득한 폐허이다. 무정부의 대혼란과 대지 혹은 동물들과 융합에 의해 인간이 아닌 그루피들의 위협과 공포정치를 펼치며 인간사냥을 자행하는, ‘돔’을 전복시키려고하는 혁명군들의 위협 속에서 생존을 해야하는 곳이다. 열여섯 살이 되어 혁명군에 강제 징집되어야만 하는 프레시아는 할아버지와 함께 무너진 이발소에서 숨어살면서 철사를 구겨만든 장난감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즉, ‘바깥’의 세계는 안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카오스’적인 세계이다.
그렇다면 ‘돔’은 어떠한가. ‘돔’은 절대 권력에 의해서 통치되는 완벽하게 통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다.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유는 철저히 압수되어 있다. ‘돔’안의 사람들은 신체의 통제를 위한 ‘코딩’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한다. ‘돔’안의 권력들은 ‘코딩’에 의해 도청은 물론이고, 폭죽이라고 불리는 폭탄을 머릿속에 심는 일도 자행한다. 한 톨의 자유도 인정되지 않는 정상자와 이상자를 나눠 통제하려고하는 ‘돔’의 세계. 그 ‘바깥’의 세계에서 혁명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도망치는 프레시아라는 한 소녀와 ‘돔’의 세계에서 진실을 찾아 ‘돔’에서 탈주한 패트리지라는 한 소년의 만남이 『퓨어』의 이야기다.
이렇게 설명하면 조금 쉬울까. 『더로드』의 세계와 『1984』의 세계가 혼합된 소설을 읽는다고 한다면. 『퓨어』는 단순히 앞선 소설들을 차용한 소설이 아니라, 그 앞 소설들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의 뛰어난 또 하나의 선례로 세워지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퓨어』는 분명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는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바깥’의 세계를 묘사하는 섬세한 언어와, 대폭발 이후 폐허가 된 지구를 표현하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이 소설이 단순한 재밋거리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곳곳에 아름다운 상징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폭발을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고, ‘돔’안의 권력자들의 음모에 의해 믿는 맥스웰의 등에는 새가 융합되어 있다. 맥스웰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바깥’에서 이곳의 진실을 찾기를, 다시 세계를 올바른 위치로 바로 잡으려는 인물이다. 그의 날개는 ‘바깥’을 벗어나 바른 세계를 꿈꾸는 그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프레시아의 주먹에는 대폭발 때 쥐고 있던 곰인형의 머리가 융합되어 있다. 그 곰인형 머리는 그녀의 성격을 말해준다. 그녀는 이제 올해 16살이 되어 혁명군에게 징집되어야 할 이제는 너무 커버린 ‘어른’이지만, 그녀는 다른 ‘바깥’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그 혼란의 삶 속에서도 고민하는 것은 할아버지와 같이 살기 위한 문제, 대폭발 이전의 ‘추억’,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주기를, 그리고 자신의 화상 상처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패트리지는 ‘바깥’과는 다르게 안전한 삶이 보장된 곳에서도 어머니와 관련한 진실을 찾기 위해 ‘돔’을 탈출한 패트리지. 그는 진실에 마주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자신의 삶까지 내팽개칠 수 있는 인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더 이상 유토피아를 꿈꿀 수 없을 때 디스토피아는 터져 나온다. 빠른 속도로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거대한 전체주의 권력 체제의 위협 속에서 『멋진신세계』 와 『1984』가 나왔고, 법, 혹은 교화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국가의 폭력성에서 『시계태엽오렌지』가 나왔다. 좀비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로메로가 퇴근길의 사람들의 피곤에 절은 발걸음에 좀비에 대한 발상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즉, 198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권력이 좀비를 탄생케 한 것이다. 『퓨어』 또한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꿀 수 없으므로 터져 나온 소설이다. 퓨어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퓨어를 읽으며 “우리가 바로 99%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길바닥으로 뛰쳐나온 월가 시위가 떠올랐다. 분명 우리의 세계는 소수의 선택된 자와, 대다수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자본주의 세계의 구조는 핵폭발과 비슷하게 어떻게든 다시 바른 제 위치로 다시 잡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 막막함은 폐허와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참혹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핵폭발이 일어나 폐허가 된 곳에서도 우리는 ‘바깥’의 인간들처럼 앞으로도 계속 살아나갈 것이며, 맥스웰처럼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세계를 바른 위치로 잡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패트리지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진실을 찾아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프레시아처럼 과거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보듬어주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다. 그것은 핵폭발이든 멸망이든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유일하고도 순수(Pure)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이 아무리 참혹한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우리가 세상에 대한 긍정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퓨어』는 3부작 소설 중 첫 번째의 소설이라고 한다. 앞으로 2013년에는 『퓨즈』 가 2014년에는 『번』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줄리아나 배곳의 이 3부작을 기다린 이유는 『퓨어』가 단순히 아름다운 묵시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이 절망으로 가득한 곳에서도 꽃처럼 피어오르는 희망을 말하는 믿을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3부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