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신간을 접했다. 『고독의 이야기들』(엘리, 2025)은 벤야민의 소설, 꿈, 설화, 우화, 비유담, 수수께끼, 말장난 등으로 버무려진 풍성한 비빔밥 같은 책이다. 여기에 각 단편이 시작되는 장마다 파울 클레의 회화 작품을 수록해 전반적인 텍스트의 아우라를 다채롭게 한다.
세심한 눈을 지닌 벤야민의 팬이라면 이 책에서 벤야민이 지속적으로 탐구한 소설, 이야기, 서사 등에 대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낚아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상가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을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고 평했다. 맞다, 벤야민의 문예이론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라면, 이 문학작품집은 탐험해 볼 가치가 충분한 보물지도가 아닐 수 없다.
책은 크게 '꿈과 몽상', '여행', '놀이와 교육론' 세 가지 테마로 나뉜다. 꿈과 몽상은 벤야민이 가장 초기에 쓴 글들과 그가 꾸고 기록한 꿈들이 실려 있다. 꿈은 무의식 세계로 진입하는 문턱으로, 꿈의 내용은 이성과 공상의 미묘한 뒤틀림을 피할 수 없다. 한편, 꿈의 메모들은 꿈꾼 자의 억압된 욕망과 은밀한 소망을 검열하고 편집하는 일련의 거름망 작업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꿈의 형식과 꿈의 메모를 포함한 '꿈의 서사'는 그 자체로 문학적 몽타주 기법과 다를 바 없다. 몽타주는 본디 여러 조각을 붙여서 만든다는 뜻이다. 꿈의 서사는 여러모로 영화나 광고에서 여러 이미지를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닮았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이 기본적으로 몽타주 기법임을 간파한 바 있다. 아렌트의 말을 빌면, 벤야민은 "글을 조각낸 다음, 이를테면 조각들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고 그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방식으로 각각의 조각들을 새롭게 재배열했다."
벤야민의 여행 사랑은 유명하다. 여행은 친숙한 것들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행과 여정이 주는 상상력은 타고난 이야기꾼의 구수한 입담이나 한밤의 꿈이 간직한 동경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가능세계에 들어서는 상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고 할까. 나그네가 잠시 머문 행선지나 낯선 공간이 어느새 초현실적인 판타지 세계로 돌변하는 것이다.